4.3! 그 歷史의 소용돌이 속에서

▲ 필자 ⓒ제주인뉴스

거제도수용소로 갈 때는 1951년 2월 말경으로 기억된다. 거제도수용소에 도착하고 보니 새로 수용소를 창설하는 중이어서 포로들도 매일 땅을 고르고, 돌멩이 운반 등의 작업을 하고 있었고 부대별로 천막을 치고 소대, 분대편성을 하였다. 나는64수용소 1대대 3소대 5분대에 소속되었다.

64포로수용소로 입소된 사람들 중에서 민간인억류자로 분류되고 인민군으로 확인된 사람은 P W 포로라 하여 63포로수용소로, 인민군관은 65수용소로 수용되고, 중공군은 별도로 수용되었다.

한참만에 수용소내의 질서가 잡히니 그런대로 생활할 만 하였다. 낮에는 주로 가설극장에서 연극을 보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었다. 포로들끼리 농악놀이 반을 만들어 재미있게 놀기도 하고 골목골목에 앉아서 포로들끼리 시장처럼 장사진을 이루는 것도 매일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포로들에게 담배 열 개비씩을 주면 담배 못 피우는 사람은 담배를 팔거나 제비뽑기 놀이도하고 담배를 많이 모인 사람은 팔기도 하고 다른 물건과 바꾸기도 하였다.

▲ 포로수용소가 시설되고 있는 초창기 모습 ⓒ제주인뉴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깡통을 잘라서 담뱃곽을 만들어 팔기도 하였다. 전쟁중에 포로인데도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돈을 놓고 도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식사시간이 되면 식사당번이 중대별로 식사통을 메고 취사반에서 밥을 타고 오면 운동장에 가서 각소대별로 항고(반합)를 들고서 일렬종대로 각자가 밥, 국을 받고서 내무반에 와서 식사를 한다.

낮에는 수용소운동장에서 축구, 배구 등 포로들끼리 운동경기도 자유스럽게 할수 있었다. 거제수용소에 온지도 3개월이 지났다. 1951년 5월경 매일 주는 밥 먹고 담배주고 또 같은 내무반 포로들끼리 놀기도 하면서 허송세월 날짜만 보내고 있었다. 가끔 수용소 내나 외부에 할일이 있으면 한국 군인들이 와서 사역할 포로들을 차출하여 가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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