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 서귀포시 지역경제팀장

주말 저녁 당근, 양배추, 무, 브로콜리 등 월동채소와 돼지고기를 함께 쪄 올리고 간장소스를 곁들였다. 

한 옹큼씩 입안에 넣어 오물거리는 애들을 바라보며 과잉생산과 소비침체로 가격이 하락한 채소를 저녁거리로 준비한 나에게 ‘어려운 농가의 시름이 조금은 덜어졌을까?’하고 되물어 보았다.

어릴 적 할머니를 따라 당근밭에 간 적이 있다. 할머니는 어린 손녀에게 당근밭의 검질(잡초)을 뽑으라고 했다. 

연푸른 색 풀들이 뾰족뾰족 무성하게 올라와 있어 부지런히 뽑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버럭 불같은 역정을 내셨다. 

애써 뽑은 풀들은 모두 당근이었다. 시장에서 혹은 마트에서 당근을 볼 때면 할머니의 우둘투둘했던 거친 손과 무서웠던 호통이 떠오른다. 할머니가 어떠한 마음으로 당근을 키워냈을지 그 때는 알지 못했기에 지금도 너무 죄송스럽다.

수 많은 농가가 채소 밭을 엎었다는 소식을 방송과 지면에서 알았다. 지난날 뽑힌 당근을 보고 역정 내셨던 할머니처럼 농가들의 새까매진 속을 어찌 감히 가늠할 수 있겠는가.

김현숙 : 서귀포시 지역경제팀장
김현숙 : 서귀포시 지역경제팀장

오늘도 나는 살캉거리고 시원한 무채를, 기름에 살짝 달달한 당근 볶음을 구수한 양배추 된장국을 그리고 새콤한 초장과 브로콜리를 저녁 주인공으로 맞이하려 한다. 

농가와 할머니의 노고로 우리에게 찾아온 속 편안한 양배추, 항암 대표주자 브로콜리, 무밥, 무찜, 장아찌 등 소화와 신진대사를 돕는 무, 항산화 효과와 야맹증 예방에 탁월한 당근. 모두 감사하고 귀한 손님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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