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유형지로 이감후 두달 만에 돌연 사망
나발니 주검 인도 지연···죽음 의혹 커져
추모 집회에 참석한 400명 이상 구금

알렉세이 나발니(Alexey Navalny)의 사진이 빌니우스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앞 바닥에 놓여 있다. : CNN 기사 본문 캡처
알렉세이 나발니(Alexey Navalny)의 사진이 빌니우스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앞 바닥에 놓여 있다. : CNN 기사 본문 캡처

 

푸틴의 유일한 정치적 대항마로 불리던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16일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IK-3)에서 사망했다.

나발니가 47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러시아 야당은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반정부 운동의 핵심 인물을 잃게 됐다.

앞서 러시아 연방 교도소 당국은 지난 16일 나발니가 수감돼 있던 최북단 시베리아 IK-3에서 산책 뒤 갑자기 사망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연방 교정청은 그가 산책 후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고만 밝혔을 뿐 며칠째 정확한 사망 이유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17일 영국 BBC는 나발니의 대변인 키라 야르미쉬를 인용해 나발니의 어머니 류드밀라 나발나야가 당국으로부터 아들의 주검을 인도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나발니의 모친은 아들의 시신이 교도소 인근 살레하르트 마을로 옮겨졌다는 말을 듣고 해당 마을을 찾았다. 그러나 당국은 “영안실 문이 닫혀 있다”는 이유로 시신을 보여주지 않았고 아직까지 시신의 행방을 알리지 않고 있다.

류드밀라는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그의 시신이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번 결정은 러시아 당국이 나발니의 죽음의 원인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붙잡고 싶어할 수도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수감된 야당 지도자가 사망한 뒤 그의 시신의 행방과 사망 경위에 대한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며 크렘린이 '흔적을 은폐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나발니에 대해 “수감기간 중 4분의 1 이상을 ‘냉동 처벌 감방’에서 보냈다”며 “그가 ‘슬로 모션(slow motion)’으로 사형당할 것이란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됐다”고 전했다.

킹스칼리지런던 러시아연구소의 막심 알류코프 연구원은 17일 영국 인디펜던트에 “나발니의 죽음은 3월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살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푸틴 정권에 의해 이번 선거가 철저히 통제되더라도, 나발니는 잠재적으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반대 목소리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며 “반체제 인사들에게 저항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17일 모스크바 루뱐카 광장의 솔로베츠키 돌에 한 추모객이 나발니를 기리기 위해 꽃을 올리고 있다. Guardian 기사 본문 캡처
17일 모스크바 루뱐카 광장의 솔로베츠키 돌에 한 추모객이 나발니를 기리기 위해 꽃을 올리고 있다. : Guardian 기사 본문 캡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자랐고 미국으로 이민한 언론인이자 작가 사샤 바실류크는 17일 미 CNN에 게재한 기고에서 "나발니의 죽음으로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고 적었다.

그는 많은 나발니 주도 집회에 참석했던 자신의 형제가 "푸틴이 죽고 정치범들이 석방되고 러시아가 더 건강한 정치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아주 작은 기회가 있었다면, 나발니는 이를 가능하게 했을 유일한 핵심이었다. 이제 그 핵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19일 스탈린 시대의 정치적 박해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인 슬픔의 벽에 헌화한 모스크바의 학생 옥사나가 "작별 인사를 하러 오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다. 우리가 나발니를 실망시킨 것 같다. 우리가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나발니의 죽음은 러시안 전역에 큰 슬픔을 안겨줬다. 러시아인들은 임시 추모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과 달리 러시아 국영 언론은 그의 죽음을 대체로 무시했다.

로이터통신은 인권 단체인 오비드인포(OVD-info)를 인용해 32개 도시에서 적어도 400명 이상이 구금됐다고 전했다. 2022년 9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예비군 동원령 반대시위에서 1300여 명이 체포된 뒤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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