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총리 암살···정치권-통일교 관계로 확대

일본 정부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고액 헌금과 관련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이하 가정연합)에 해산명령을 청구하자 가정연합 일본 교회 측이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사과에 나섰다.

마이니치신문 등은 지난 9월 4일 일본 정부가 고액 헌금 등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가정연합에 대해 법원에 해산 명령을 청구하기로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현재까지 일본에서 정부에 의해 해산된 종교 법인은 사린 가스 테러를 일으킨 옴진리교, 사기 사건을 벌였던 묘카쿠지(明覚寺) 등 2곳이다.

일본 정부는 약 1년간 가정연합에 대한 질문권을 행사해 입수한 자료와 증언을 조사한 결과 해산명령 청구 요건인 조직성, 악질성, 계속성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갖춰진 것으로 판단해 지난달 13일 도쿄지방재판소에 통일교 해산 명령을 청구했다.

일본 정부가 해산 명령을 청구하자,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기 전 통일교가 와해되거나 미리 자산을 빼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암살한 야마가미 데쓰야. : NHK 캡처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암살한 야마가미 데쓰야. : NHK 캡처

 

앞서 지난해 7월 8일 일본 우익 세력을 대표하는 거물 정치인이 대낮 유세 현장에서 총격을 당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갑작스런 불행한 죽음을 당한 이는 아베 신조 전 총리였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일본 정치권에서 큰 영향력을 가졌던 정치인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일본 열도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통일교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가문과 맺은 오랜 인연을 토대로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세력인 자민당 내에서 견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인연은 아베 전 총리의 암살로 이어졌다.

범행 직후 체포된 야마가미 데쓰야(42)는 “어머니가 통일교에 거액(1억엔·약 9억6000만원)을 기부해 해당 종교 단체와 관련된 불행한 가족사가 직접적인 범행 동기였다”고 진술했고, 이후 일본 현지에서 가정연합의 고액 헌금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NHK 등에 따르면 가정연합 일본 교회 다나카 도미히로 회장은 지난 7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헌금을 할 때 가정 사정과 경제적 상황에 대해 배려가 부족했고 법인의 지도가 (개개인 신자까지) 널리 미치지 못했다"며 “가정연합 신도 2세들과 국민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다나카 회장은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자금 공탁을 제안하면서 "정부가 현행법에는 없는 자금 공탁 관련 제도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정연합은 피해자 구제를 위해 60억~100억엔(약 522억~871억원) 규모의 특별 공탁금을 정부에 내겠다고 제안했다.

다만 가정연합이 제안한 특별 공탁이 현실화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현행법상 공탁은 법령으로 의무화된 경우에 한정한다. 하지만 통일교 고액 헌금 사건에선 채권자가 특정되지 않아 공탁이 의무화된다고 볼 수 없다.

다나카 회장은 해산명령 청구에 대해선 “종교를 믿을 자유, 법의 지배 관점에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다나카 회장은 "해산명령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는 자금을 해외로 보내지 않겠다"며 정치권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피해자 배상을 위한 교단 재산 보전'은 필요가 없는 조치라고 반박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가정연합의 공탁 제안에 대해 "언급을 삼가고자 한다"면서도 "공탁은 법령에 규정된 경우에만 가능하며, 인정 여부는 구체적 사실에 근거해 법령에 따라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피해자 구제가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현행법의 모든 제도를 활용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피해자 구제의 실효성 확보와 관련해 여야 각 당의 여러 움직임을 주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해산명령을 청구한 직후 가정연합 관련 피해자가 약 1550명이며, 피해 규모는 손해배상액 등 총 204억 엔(약 1776억 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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