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만 올러]

아돌프 히틀러. 출처 : HISTORY ON THE NET
아돌프 히틀러. 출처 : HISTORY ON THE NET

 

어쩌면 프랑스는 1940년에 벌써 사망했을지 모른다. 11일 만에 독일에 패배한 이 나라는 결코 그 굴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프레데릭 베이그베더(Fredric Beigbeder) 프랑스 작가, 영화감독

육군 참모총장 할더 장군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독일군 앞에 놓인 과제는 지난하다. 험난한 지형(뫼즈강)과 현존하는 전력 격차, 특히 포병 전력의 격차는 단번에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비상수단이 있다. 그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비상수단은 메스암페타민이었다. 구데리안 장군이 다음과 같이 명령했을때 장병들에게 꼭 필요한 것도 바로 이 약물이었다.

'본 지휘관은 제군들에게 비상시 최소 사흘 밤낮 동안 자지 말 것을 요청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왜냐하면 반드시 사흘 안에 프랑스 국경도시 스당에 도착해서 국경의 뫼즈강을 건너야만 여전히 벨기에 북부에 진을 치고 있거나 남쪽 마지노선에서 움직이고 있는 프랑스 주력군보다 북프랑스에 먼저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페르비틴 공급은 국방군에서 준비했다. 각 부대 병참 장교들은 필요시 최고 사령부에 알약을 주문했다. 예를 들어 제1 기갑 사단병참 책임자 그라프 폰 킬만제크Graf von Kielmansegg 장군(1960년대에 중부 유럽 지상군 총사령관에 임명됨)은 20만 정을 주문했고 5월 10일에서 11일로 넘어가는 밤사이에 부대 단위별로 집단 복용이 실시됐다. 수천 명의 군인이 군모 깃에 넣어 둔 약을 꺼내거나 군의관에게서 약을 받아 입에 넣고 물과 함께 삼킨 것이다.

효과는 20분 후에 나타났다. 뇌 신경 세포는 신경 전달 물질을 분비했다.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은 순식간에 지각 작용을 강화하면서 유기체를 절대적인 경보 상태로 몰아넣었다. 밤의 어둠이 서서히 걷혔다. 간밤에 잠을 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길 위에 헤드라이트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거대한 독일 뱀이 벨기에를 야금야금 삼켜 나갔다. 처음 몇 시간의 불쾌함과 좌절감은 이제 다른 야릇한 감정에 자리를 내주었고 나중에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시작됐다.

섬뜩한 오한이 두피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더니 뜨거운 냉기가 두피 속을 가득 채웠다. 제1차 세계 대전 때와 같은 강철 뇌우는 아직 내리지 않았다. 그 대신 화학적 뇌우가 내렸다.

뇌속에서는 간간이 황홀한 번개가 쳤다. 행동 욕구는 최고조에 달했다. 전차 조종사는 미친 듯이 운전했고 무전병은 미래형 타자기를 연상시키는 암호기로 무전을 했으며 검은 군복 바지에 짙은 회색 셔츠를 입은 소총수들은 망원경 앞에 발포 준비 상태로 웅크리고 있었다. 휴식은 없었다. 대뇌에서는 폭풍 같은 화학 공격이 쉴 새 없이 이어졌고 유기체는 더 많은 양의 영양소를 방출하고 더 많은 당을 만들어 냈다.

그로써 전차는 최대 마력으로 달렸고 피스톤은 더 빨리 아래위로 움직였다. 혈압은 25퍼센트까지 상승했고 심장은 가슴의 실린더 방에서 거세게 요동쳤다.

아침에 첫 전투가 있었다. 벨기에 수비군은 작은 국경 마을 마르텔랑주 근처의 언덕 벙커에 진을 치고 있었다. 앞에는 탁 트인 경사면이 수백 미터 펼쳐져 있었다.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방법은 정면 공격밖에 없어 보였지만 그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약에 취한 독일 보병이 그랬다. 불나방처럼 죽음을 향해 뛰어들었다. 두려움 없이 무작정 돌격해 오는 행동에 겁을 먹은 벨기에 군인들은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군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완전히 고삐 풀린 공격자들은 단순히 요새 확보에 그치지 않고 즉시 적을 뒤쫓았고, 벨기에군은 혼비백산해서 도주했다. 이 첫 전투는 향후 전투의 양상을 미리 보여 주는 징후였다. 

 

1945년 4월, 네덜란드의 텍셀 섬에 주둔한 독일 군에서 복무하는 조지아 출신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독일 군 동료들을 학살했다. 베를린은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지만, 텍셀에서의 폭력은 몇 주 동안 계속됐다. 출처: WikiMedia Commons
1945년 4월, 네덜란드의 텍셀 섬에 주둔한 독일 군에서 복무하는 조지아 출신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독일 군 동료들을 학살했다. 베를린은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지만, 텍셀에서의 폭력은 몇 주 동안 계속됐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사흘 뒤 기갑 사단장은 실제로 프랑스 국경에 도달했다고 보고했다. 이제 스당이 코앞이었다. 많은 병사가 출정 이후 한숨도 눈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서둘러야 했다. 독일 포병의 포격은 정각 16시에 예정돼 있었다. 정시 포격과 함께 하늘에서도 엄청난 폭격기 물결이 몰려왔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수직으로 대담하게 급강하를 하면서 프랑스 진지 바로 위까지 돌진할 때마다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렸다.

이른바 '제리코 트럼펫'이라고 불리는 이 사이렌 소리 뒤에는 늘 엄청난 폭발이 뒤따랐다. 지상에서는 공기 압력으로 창문이 덜커덩거렸고 국경 도시의 집들이 흔들렸다.

동시에 조종사들의 뇌에서도 약물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콸콸 쏟아진 신경 전달 물질이 시냅스 틈에 부딪혀 터지면서 산산이 흩어졌다. 부서진 물질은 신경 통로를 따라 경련을 일으키듯이 지나갔고, 신경 세포 사이에서는 번쩍번쩍 불꽃이 일었으며, 윙윙거리고 포효하는 소리가 모든 것을 장악했다.

반면에 지상의 수비군은 귀를 막고 웅크렸고, 벙커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강하하는 전투기의 사이렌 소리는 찢을 듯이 귀청을 때리면서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이어진 몇 시간에 걸쳐서 독일군 병력 6만 명과 차량 2만 2000대, 전차 850대가 강을 건넜다.

'우리는 일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환희와 감격에 빠졌다'

한 전쟁 참여자가 말했다. '우리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무척 지쳤지만 한껏 고무된 상태로 차안에 앉아 있었다'

독일군은 일찍이 본 적 없는 도취 상태에서 프랑스 국경 도시를 점령했다. 국방군 공식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장엄하게 적을 무찌른 전사의 용맹스러움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민족주의적 열정이 전쟁에 대한 열광을 불러일으켰다면,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바로 마약이 독일군에게 그런 감격과 흥분을 일으키는 데 막대한 도움을 줬다.

몇 시간 뒤 프랑스 예비군이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이미 게임은 끝난 상태였다. 그들은 늘 너무 늦게 나타났고, 종료된 상황을 보고 패닉에 빠졌다. 독일군은 벌써 뫼즈강을 건넜고, 댐은 무너졌다. 프랑스군은 마지막 항복의 순간까지 독일군의 이런 기동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항상 너무 늦게 움직였고 번번이 뜻하지 않은 급습으로 제압당했다. 한 번도 주도권을 잡은 적이 없었다.

독일 국방군 보고서에 적힌 내용을 보자.

'프랑스군은 우리 전차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허둥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상태에서는 방어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1940년 5월과 6월에 조국을 위해 입대한 프랑스 역사가 마크 블로크Marc Bloch는 '정신적 패배'에 대해 말한다.

'우리의 군인들은 패했다. 그것도 너무 쉽게 패했다. 생각에서 뒤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 프랑스인의 뇌는 황홀한 예외적 상황에 지배받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블로크는 침략자들이 초래한 절망적 혼란을 이렇게 묘사한다.

'독일인은 어디서든 나타났다.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불쑥불쑥 나타났다. 그들은 집단행동과 불예측성을 믿었다. 반면에 우리는 고정된 것과 익숙한 것을 신뢰했다. 독일인들은 출정 내내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지점에 정확히 나타나는 끔찍한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통상적인 게임 규칙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부인하기 어려운 우리의 확실한 약점은 우리 뇌가 대체로 너무 느린 리듬에 학습돼 있다는 점이다'

사실 첫날의 폭격으로 스당에서 희생된 프랑스인은 57명으로 그리 많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독일군의 미친 듯한 행동이었다. 이것이 끼친 정신적 효과는 컸다.

이 출정은 정신에서 결정됐다. 프랑스 조사 보고서에는 독일군의 신속한 뫼즈강 횡단과 프랑스군의 방어 실패와 관련해서 '집단적 환각 현상'에 대해 언급돼 있었다.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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