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형 선고 뒤 25년간 수감생활...극단적 선택 추정
하버드대 출신 수학교수, 17년간 소포로 사제폭탄 보내

테드 카진스키가 1996년 4월 4일 미국 몬태나주 헬레나 연방 법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 BBC 기사 본문 캡처
테드 카진스키가 1996년 4월 4일 미국 몬태나주 헬레나 연방 법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 BBC 기사 본문 캡처

 

미국 몬태나 시골의 판잣집에서 치명적인 폭탄 테러를 일으켜 '유나바머(Unabomber)로 알려지게 된 하버드대 출신의 수학 교수 테드 카진스키(Ted Kaczynski)가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11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말기 암을 앓고 있는 81세의 카진스키는 3일(현지시간) 오전 12시 30분쯤 노스캐롤라이나주 버트너(Butner)에 있는 연방교도소 의료센터에서 무반응 상태로 발견됐다.

긴급구조대원들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한 뒤 그를 소생시킨 후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이날 늦은 아침 사망 판정을 받았다.

보도에 따르면 미 연방 교도소 관계자들은 카진스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공식적인 사인 규명을 위한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카진스키의 죽음은 2019년 연방 교도소에서 자살한 억만장자 금융인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의 사망 이후 지난 몇 년 동안 연방 교도소의 조사가 강화된 가운데 발생했다.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의 대학과 항공사 등에 소포로 사제폭탄을 보내 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에게 부상을 입힌 혐의로 1998년 유죄를 인정한 후 4번의 종신형과 30년형을 선고받았다.

1998년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카진스키는 속옷으로 목을 매려고 시도했다. 감옥에서 그를 인터뷰한 정신과 의사는 카진스키를 편집증적 정신분열증 환자로 진단했다.

하지만 카진스키는 재판과정에서 정신분열증을 주장해 유리한 판결을 받으려는 변호인의 전략을 거부하고 결국 유죄를 인정했다. 이후 1999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망상 따위에 시달리지 않았다”며 “나는 제정신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카진스키는 1995년 각 언론사에 ‘산업사회와 미래’라는 제목의 3만5000단어 분량의 선언문을 보낸 뒤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는 성명서에서 기술을 통한 문명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라면서 혁명을 통해 산업사회를 전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진스키는 감옥에서 수십 년 동안 외부 세계와 정기적으로 통신을 유지하면서 현대 문명에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매혹의 대상이 됐으며 심지어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비영리 싱크탱크인 뉴라인스 인스티튜트(New Lines Institute)의 국내 테러 전문가인 대릴 존슨(Daryl Johnson)은 "그는 극우와 극좌 모두에게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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