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만 올러]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화학 약물을 어떻게 활용하고 실제 전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다룬다.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노르만 올러는 히틀러의 주치의 테오도르 모렐의 기록을 토대로 히틀러의 행적을 재현해낸다.

예를 들어 1943년 7월18일 동부전선이 소련의 대규모 공격으로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이탈리아가 독일과의 동맹을 파기하겠다고 나서자 히틀러는 심인성 변비와 위 경련으로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된다.

무솔리니와의 중요 회담을 앞둔 상황에 한밤 중 소환된 모렐은 기본 약물 치료로는 효과가 없자 ‘꿈의 물질’이라는 모르핀의 일종인 오이코달을 처치했다. 직후 히틀러는 수행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히틀러는 비행장으로 떠나기 전 오이코달 앰플과 근육주사를 다시 맞았다. 그가 무솔리니를 만났을 때 쉴 새 없이 떠들며 이상할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보고서에서 확인된다.


히틀러의 독일 정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을 비롯해 공군, 해군까지 병사들에 메스 암페타민이 주성분인 '페르비틴'을 배급했다.

전장에서 약물을 복용한 독일군은 36~40시간이나 잠도 안자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깨어있을 수 있었다. 밤낮 없이 진군했고 망설임 없이 적진으로 돌격했다. 

 

 

1944년 하반기 히틀러의 병사들에게 더 이상 승리는 없었다. 

8월 말 파리는 연합군에 함락당했고, 8월 23일 독일군은 그리스뿐 아니라 남동부 유럽 전역에서 퇴각했다. 9월 11일 미군은 트리어에서 제국 국경을 넘었다. 모든 전선에서 피 흘리고 쇠약해지고 짓밟힌 독일군은 이미 패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페르비틴은 이제 버티고 탈출하는 데만 도움이 됐다. 한 기갑 부대 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보고했다. 

'우리는 러시아에서 탈출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100킬로미터마다 운전을 교대하고, 페르비틴을 삼키고, 주유를 위해 정지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크리스털 메스를 과도하게 섭취한 사람의 3분의 2가 3년 뒤에 정신병을 앓는다고 한다. 페르비틴과 크리스털 메스는 동일한 활성 물질인데, 수많은 병사가 폴란드 기습과 프랑스 전격전, 그리고 늦어도 소련 침공 이후에는 웬만큼 규칙적으로 이 물질을 복용했다. 

그렇다면 전쟁 막바지 무렵에는 그 부작용으로 집단 정신병이 발생했을 테고, 게다가 더 뚜렷한 효과를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복용량을 늘렸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1944년에도 페르비틴 열풍이 분 것은 놀랍지 않다. 템러 공장에서 보건 및 건강국장에게 보낸 한 편지가 이를 증명한다. 종전 몇 개월 전에도 이 회사는 에페드린, 클로로포름, 염산가스 같은 원료를 페르비틴 생산을 위해 자사에 배당해 줄 것을 당국에 요청했다. 

'군수 및 전쟁'을 위해 400만 정의 페르비틴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사이 템러 공장은 전쟁 때문에 독일 남서부의 목골 건물 도시 마이젠하임으로 이전했다. 그것도 하필 양조장으로 옮겼다. 이렇게 해서 전시 독일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 물질이 한 지붕 아래서 생산됐다. 맥주와 메스.

독일 공군도 성능 향상 물질을 포기하지 않았다. 1944년 7월 공군에서는 오직 페르비틴 문제만을 논의하기 위해 의료-과학 업무 협의가 열렸다. 육군 의무대도 페르비틴을 사용했는데, 특히 부상자 수송 과정에서의 사용은 명확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44년 11월, A 집단군 야전 병원 열차의 의무감은 모르핀과 모르핀-페르비틴 칵테일의 효과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중상자도 아편 유사제 주사에다 페르비틴 두 정을 추가했더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확인됐다. 생의 활력이 개선되면서 건강 회복의 의지도 강해졌다. 그렇게 전쟁에 다시 투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출처 : History on the Net
출처 : History on the Net

 

그러나 재투입을 원하는 병사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이미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지쳤고, 긴 회복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마지막 총알까지 결사 항전 하자는 선전 슬로건도 공허하게 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에 대한 열정은 말을 꺼낼 수가 없었고, 분위기는 완전히 착 가라앉았다. 그러나 중단은 없었다. 야전 원수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Gerd von Rundstedt의 일일 훈시는 여전히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었다. 

'가차 없는 전진의 종이 울렸다!' 최고 사령부의 지침도 다르지 않았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의료젹 양심에 걸릴 수도 있지만, 작금의 상황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화학 물질도 포함된다.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최종 승리'라는 구호는 병사들에게 점점 더 진부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전의를 다시 일으켜 세울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군은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죽은 사람도 벌떡 일으켜 세워 다시 총을 들게 할 만큼 중추 신경계의 수용체를 인위적으로 강력하게 자극하는 물질이었다. 

미친 짓거리로 들리지만, 나치 지도부는 지푸라기도 잡아야 하는 전쟁 막바지에 기적의 무기를 개발하려는 부단한 노력과 병행해서 다시 한번 화학적 방법으로 전세를 뒤집을 기적의 마약을 찾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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