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희생자 유족인 김인근 할머니(86)가 지난달 30일 오후 제주시에 있는 자택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2021.4.3/뉴스1© 뉴스1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답답해 죽을 것 같았던 어느 날엔 총 맞아 몸져누운 어머니를 일으켜 같이 자살터로…"

지난달 16일 오후 6시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

제주4·3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행방불명된 오빠 고(故) 김호근씨에게 70여 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자 김인근 할머니(86)는 두 손으로 벌개진 얼굴을 감싸쥐며 흐느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재판장의 이어진 물음에 김 할머니는 가슴을 치며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하지만 이제라도…"라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선고가 끝나 법정을 떠나야 할 순간에도 김 할머니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17살 때 소풍을 가자며 아픈 어머니를 속인 뒤 소위 '자살터'로 불리는 해안가 절벽으로 가던 날, 끝내 '난 죽어도 괜찮지만 넌 결코 죽어선 안 된다'던 어머니의 생전 목소리가 자꾸 떠오르는 탓이라고 했다.

 

 

 

 

 

 

 

제주4·3 희생자 유족인 김인근 할머니(86)가 제주4·3 당시 화북초등학교 상황을 그린 그림.2021.4.3/뉴스1© 뉴스1

 

 


제주시 화북1동 화북리에서 보리나 콩을 키워 팔던 김 할머니의 삶이 통째로 뒤틀리기 시작한 건 1948년 겨울 그 때의 일 때문이다.

일본 유학 중 제주로 돌아와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던 김 할머니의 오빠 호근씨(당시 23세)는 당시 직장에 출근할 때마다 "동참하지 않으면 총으로 쏘겠다"는 살해 협박을 받던 끝에 가족과 상의 후 대한청년단에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호근씨는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무장대에 의해 산으로 끌려갔다. 대한청년단에 들어갔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할머니는 "그 때 산 사람들(무장대)이 '어떻게 너만 따뜻한 방에 있을 수 있느냐. 우리와 함께 가야 한다'고 소리쳤었다"고 기억했다.

더 흉한 일은 김 할머니가 14살이 되던 이듬해 1월에 터졌다. 호근씨의 행방이 묘연한 상황에서 군인들이 김 할머니 가족을 악독하게 추궁하다 총살하기에 이른 것이다.

가장 먼저 화북초등학교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아버지는 인근 저수지에서 총살당했고, 뒤이어 김 할머니와 함께 화북초로 끌려간 뒤 군용트럭에 실려간 어머니와 언니, 만삭의 올케, 2살·4살짜리 조카들 역시 논두렁에서 모조리 총을 맞았다.

어머니와 언니는 총상을 입고도 서로 죽을 힘을 다해 현장에서 도망쳤지만, 결국 언니는 도중에 '친척집에 숨어 살겠다'며 어머니를 밀쳐 보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로 갔다. 어머니는 턱 등 무려 7군데에 총상을 입고 85살까지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

 

 

 

 

 

 

 

 

 

제주4·3 희생자 유족인 김인근 할머니(86·왼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달 17일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 앞에서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4·3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행방불명된 김 할머니의 오빠 고(故) 김호근씨는 이 전날 73년 만에 무죄를 인정받았다.2021.4.3/뉴스1© 뉴스1

 

 


김 할머니는 가족과 함께 문제의 군용트럭에 실려가다 홀로 뛰어내려 목숨을 부지했다.

"이 빨갱이 자식이 어딜 도망가!"하는 군인들의 외침과 동시에 총부리로 온몸을 두들겨 맞은 김 할머니는 이름 모를 한 군인의 만류로 겨우 그 곳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하루 만에 피떡이 된 채 집에서 상봉한 두 모녀는 소변이나 동네 사람들이 보내준 얇은 소고기, 저민 호박으로 상처를 치료하며 지냈다. 김 할머니는 "그 때 받은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 보면 살게 된다)'던 이름 없는 쪽지가 참 힘이 됐었다"고 회고했다.

6개월쯤 지났을까. 두 모녀는 호근씨도 다시 만났다. 그러나 제주경찰서에서였다. 호근씨는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왔다가 붙잡혀 고문을 받고 있던 상태였다.

애처로운 만남도 잠시, 호근씨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제주주정공장으로 끌려갔다가 또다시 행방불명됐다. 한참 뒤 '서울 마포형무소' 소인이 찍힌 편지를 받고 나서야 두 모녀는 호근씨가 수감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소식은 영영 알 수 없었다.

김 할머니는 "나홀로 살아남았다는 죄, 빨갱이·도망자 가족이라는 죄, 가족들 세상 떠날 때 피범벅된 옷을 수의로 입힌 죄를 안고 73년을 살았다"며 "솔직한 심정으로 '무죄'라는 두 글자에 순간 억울한 마음이 '욱' 하고 올라오기도 했다"고 눈을 질끈 감았다.

김 할머니는 "그래도 내가 살아 있을 때 오빠의 억울함이 풀려 얼마나 기쁜 줄 모른다"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은 죄 하나 없이 먼저 간 우리 가족의 명복만을 기리며 편안히 살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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