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뉴스1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박 회장은 전국 18만 상공인을 대변하는 경제단체 대한상공회의소도 이끌고 있다. 그가 지난 35년여 간 기업을 경영한 소회와 삶의 단상을 담아낸 에세이를 최근 펴냈다.

신간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는 박용만 회장이 기업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개인사, 경영 일선에서 흘린 땀과 눈물, 그가 지켜온 가치와 꿈꿔온 미래에 대한 생각이 빼곡히 담겼다.

예상 밖으로 박용만 회장의 첫 직장은 두산이 아니었다. 1955년 고(故) 박두병 회장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1978년 한국외환은행에 입사해 2년간 금융계에 몸을 담았다.

박 회장이 두산에 입사한 것은 미국 보스턴대 MBA과정을 수료한 이후다. 그가 입사 초기에 맡은 업무는 청량음료 영업이었다. 당시 그는 세무 자료 없이 장사를 하는 관행을 근절하고 싶었지만 영업사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박 회장은 이때를 회상하면서 '큰 변화 앞에서 사람을 움직이게 할 방법은 무엇인가'를 깊게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결국 그는 기업경영에서 인재와 소통을 중요하게 다루고 실천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 그룹하면 떠오르는 광고 카피도 박 회장이 직접 쓴 작품이다.

이런 회고에서 출발한 그는 IMF시기 구조조정이라는 파고를 넘은 일, 획기적 인수합병(M&A)를 통해 두산 그룹의 외연을 확장해간 일, 대한상공회의소 와 정부와의 협업 등 그가 지난 35년간 걸어온 발자취를 꾹꾹 눌러 썼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왼쪽)이 강북구 미아동 할레루야닭집에서 주민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제공 대한상공회의소)© 뉴스1

 

 


박 회장은 두산그룹 회장 취임 후 현장경영 활동에 주력했다. 취임 후 1년간 국내외 출장 거리는 지구(약 4만120여km)를 4바퀴 돌 수 있는 총 16만1589km였다. 비행시간만 212시간이었다. 이 기간에 해외 출장 국가는 총 24개국, 국내 방문 도시는 15곳에 달했다.

박 회장은 IMF시기와 여러 M&A 과정에 대해 "변화와 혁신은 모두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누군가는 싫어도 먼저 나서서 감내해야 했다"고 했다.

책은 자연인 박용만에 관해서도 다룬다. 박 회장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회장 취임식이 아니라 '아내와 김치밥을 해 식탁에 마주 앉아 있던 어제저녁'이라고 고백했다.지갑을 안 가져와서 장충동 냉면집에서 외상값 5만2000원을 달아야 했던 일상사는 잔잔한 웃음을 동시에 전한다.

가슴이 아픈 가족사와 투병기도 다뤘다. 아버지 고(故) 박두병 회장은 그가 18세에 돌아가셨다. 이복 큰형(고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은 "이제부터 너는 내 동생이다"라고 그에게 말했다. 세번의 허리 수술과 대장농양 수술 등은 그가 인생의 한계단을 더 오르고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신간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는 박 회장의 진솔한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는 책에 이런말을 남겼다. "살다 보면 양지 아래 그늘이 있다. 그늘 안에도 양지가 있었다. 양지가 그늘이고 그늘이 양지임을 받아들이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다. 그게 다 공부였지 싶다"

박용만 회장이 책을 출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필작가가 기업인의 구술을 받아 가공하는 일반적 관행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한다. 책 내용은 그가 SNS 등이 남긴 글이 바탕이 됐다. 출판사에 따르면 박 회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썼고 편집자가 판형 등을 제외한 집필 내용에 대해 손을 대지 않았다.

◇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박용만 지음/ 마음산책/ 1만6000원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주말을 맞아 도심을 찾아 취미생활인 사진을 찍고 있다.(제공 대한상공회의소)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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