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기고〕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 강봉수 / 우당도서관 관리팀장
  • 승인 2018.10.3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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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봉수 우당도서관 관리팀장
▲ 강봉수 우당도서관 관리팀장

 

 꽃이 피고 푸르던 계절이 지나 세상은 온통 울긋불긋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은 짧기만 한 것일까.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길지 않을 듯하다. 따사롭던 햇살도 붉은 노을에 타서 더욱 짧아지고 있다. 저녁놀 사이로 불어오는 찬바람에 서로 몸을 비비며 춤을 추는 새별오름의 억새들. 그들이 서로 몸을 비비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세상을 집어 삼킬 듯 몰아치던 태풍과 현무암 바위를 두 동강 낼 듯 소리치던 천둥소리에도 쓰러지지 않고 견뎌낸 날들과 찬란히 빛나는 가을의 영광을 기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밤이 깊었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던 시절은 이제 희미하다. 중년의 부부는 TV채널을 드라마에 고정시켰다. 아이들은 컴퓨터나 핸드폰에 시간을 저당 잡혔다. 장식용으로 홀대 받는 책들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늙어가고 있다. 창문 밖 울타리 안에 벌겋게 잘 익은 감이나 달빛 돌담 사이로 눈을 뜬 황금빛 귤도 애처롭다. 누구하나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이가 없어서 일게다. 사람들은 밤 이 긴 가을을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 말을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길을 찾으러 도서관으로 온다. 그중 대다수는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필요한 경쟁의 선을 넘는 순간 책을 읽는 일도 도서관을 찾는 일도 잊어버릴 것이다. 도서관을 단지 시험 공부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고 인간관계의 이해를 도우며 사물에 대한 사고의 틀을 넓혀주는 활동을 지원하는 곳이다. 그래서 도서관을 찾는 건 삶의 스타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일과 세상사에 묻혀 허덕이면서도 한 달에 몇 번이라도 영혼에 불을 밝히거나 산소 공급을 하는 공간으로서 도서관은 이제 정보제공과 평생교육, 문화센터, 레크리에이션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공공도서관은 이런 기능과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많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도서관이 주는 혜택을 많은 시민들이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도서관 이용자 가운데서도 도서관에서 길을 잃는 이들이 많다.

 시민들은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잘 모르기도 하지만 시험공부를 제외한 다른 것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인문학강의와 교양체험 등 도서관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잘 이용한다면 삶의 질은 한층 나아질 것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삶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올 가을은 도서관에서 길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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