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보수성향 학자들이 집필하고 교학사가 펴낸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심의를 최종 통과하자 진보진영에서는 이 교과서가 우편향으로 역사를 왜곡했다고 비난하고, 보수진영은 균형잡힌 시각에서 기술됐다고 반박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권까지 가세해 여당과 야당으로 나눠 공방을 벌이는가 하면 진보진영에서는 아예 합격을 취소하라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진보성향의 일부 지방 교육감들은 지난 6월 검정심의 본심사에서 교학사 교과서가 통과되자마자 이 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제주지역 국회의원들도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강창일·김우남·김재윤 등 제주지역 국회의원들은 최근 성명을 통해 "국사편찬위원회는 교학사가 펴낸 제주 4·3사건을 편향하고 왜곡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검증 합격을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이 교과서에서 문제삼고 있는 부분은 4·3사건에 대해 '봉기를 일으켜 경찰서와 공공 기관을 습격하였다. 이때 많은 경찰들과 우익 인사들이 살해당하였다.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는 무고한 양민의 희생도 초래되었다'고 서술해 희생자 대부분이 양민이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했다는 것이다.

또 '4·3사건은 1948년 ‘5·10 총선거’가 결정되자 남조선 노동당이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제주에서 4·3 봉기를 일으켰다'며 4·3진상보고서와 다르게 서술한 부분 등 심각한 왜곡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근거도 제시했다. 4·3사건은 1947년 3월1일, 제주읍 관덕정 마당에서 ‘3.1절 28돌 기념집회’에 참석한 시위 군중을 향해 경찰이 총을 발포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진상보고서에 명시돼 있다는 것이다. 제주지역 의원들은 이 사건이 단순히 공산폭동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잔인한 인권유린임에 틀림없다고 강변한다.

문제의 교학사 교과서 필자는 모두 4명인데 이중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진보진영에서 뉴라이트 계열 단체로 분류하는 한국현대사학회에서 각각 회장을 맡았거나 맡고 있다. 이 학회는 2011년 역사교과서의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자유민주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제기해 논란을 일으켰고, 지난 5월에도 현행 중·고교 역사교과서가 지나치게 좌편향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이곳 출신 학자들이 집필한 교과서가 지나친 우편향적 시각일 것이라는 우려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역사교과서의 이념 편향성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진보진영에선 보수 학자들이 쓴 교과서가 우편향됐다고 공격해왔고, 보수진영은 기존 교과서가 좌편향됐다고 비난해왔다. 2008년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이 대안 교과서를 발간했을 때도 양 진영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때는 단행본에 불과했고 이번은 정식 교과서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부가 국정교과서 대신 검인정 교과서 제도를 채택한 것은 학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이번 국편의 검정심의에 최종 통과한 8종의 교과서는 이달중 각 학교에 전시해 학교별 채택과정을 거친 뒤 내년 3월부터 일선 고교에서 사용된다.

문제는 얼마나 많이 채택될까 인데, 논란이 커질수록 해당 교과서의 채택률은 낮아질 것이다. 어느 교과서가 균형잡힌 역사를 가르치는데 적합한지 판단하는 것은 학교 현장의 책임이다. 그러니 채택과정에서 무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

2017년에는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이 된다는데 교과서 내용을 둘러싸고 여전히 역사왜곡 논쟁을 하고 있으니 혼란스러워 할 학생들에게 어른으로서 못할 짓이다. 언필칭,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자칫 오류와 왜곡의 역사를 가르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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