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주년 제주4·3 추념일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고복자씨(75)가 아버지 표석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2021.4.2/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제주에 광풍이 몰아치던 1949년 당시 두 살배기였던 고복자씨(75)는 어느새 70대 노인이 돼 4월이면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역을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닌다.

4·3추념일을 하루 앞둔 2일 여느 때처럼 행불인 묘역을 찾은 고씨는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을 풀 새도 없이 아버지 이름 석자가 적힌 표석을 부여잡고 눈물을 쏟아냈다.

한참을 오열하다 아버지 앞에 절을 올린 고씨는 이내 일어나 다시 손에 빵과 과일, 소주를 가득 들고 다른 구역의 표석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가 하루에 참배하는 행불인 표석만 4개.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들이다.

이들 모두 제주4·3 당시 군사재판을 받고 각지의 형무소로 뿔뿔이 흩어져 유해를 찾기는 커녕 언제, 어디서 숨을 거뒀는지조차 아득하다.

고씨에게 이번 4·3추념일은 그 어느 때보다 서럽고 또 특별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죄인의 누명을 쓰고 있던 아버지가 지난달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제73주년 제주4·3 추념일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고복자씨(75)가 아버지 표석 앞에서 절하고 있다.2021.4.2/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고씨의 아버지 고철송씨(당시 27세)는 4·3 당시 국방경비법위반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 받고, 타지 형무소로 옮겨진 후 행방불명됐다.

그리고 73년이 지난 후에야 죄인이라는 모진 굴레에서 벗어났다.

지난달 16일 법원은 국방경비법 위반 및 내란실행 혐의 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제주4·3 수형인 335명(행방불명 333명, 생존인 2명)의 재심 청구사건 선고공판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고씨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지만 선고 당일 직접 법원에 가서 무죄라는 판결을 내 귀로 직접 들으니 그간의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고 눈물지었다.

이제 그의 아버지는 모든 누명을 벗고 죄없는 사람이 됐지만 여전히 고씨는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는 "작은 아버지의 경우 호적상 직계가족이 아무도 없고, 형제자매도 모두 세상을 떠나 이번에 아버지와 함께 무죄선고를 받을 수 없었다"며 "가족들이 모두 무죄판결을 받아야만 이 모든 억울함이 풀릴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73주년 제주4·3 추념일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역에 제주4·3을 상징하는 동백꽃이 펴 있다.2021.4.2/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고씨의 마지막 바람은 오는 6월 전부 개정 4·3특별법이 시행되면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개정된 제주4·3특별법에 당시 군사재판을 통해 형을 받은 2530명의 수형인에 대한 특별재심 조항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이 조항에 따라 가족이 없는 수형인의 경우에도 재심으로 명예회복의 길이 열리게 됐다.

대화를 마친 후 고씨는 3973개의 표석이 서 있는 묘역에서 단 한 번의 헷갈림도 없이 단번에 가족들의 표석을 찾아 한참을 머물렀다.

아버지 표석을 찾은 김녕자씨(78)는 함께 온 여동생, 외손자와 함께 절을 올린 참이었다.

김씨 아버지 김인수씨(당시 27세) 역시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서 어디론가 끌려간 후 아직까지 행방불명 상태다.

김씨의 남동생은 4‧3사건이 발생하던 해 어머니의 배 속에 있다 아버지가 끌려간 후에야 태어났다.

김씨는 "어머니가 우리 걱정에 당시 상황에 대해 정확히 말해주지 않아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왜 돌아가셨는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는 아직 할 일이 많지만 4·3특별법이 통과된 것만으로도 희망적인 일 아니겠냐"고 반문하며 웃어보였다.

4·3특별법 개정과 수형인 335명에 대한 무죄선고 이후 처음 맞는 제주4·3 추념일을 앞둔 행불인 묘역은 매년 반복되던 슬픔을 넘어 새로운 희망의 기운이 넘실대고 있었다.

 

 

 

 

 

 

 

 

 

사진은 7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한 행방불명 수형인 300여 명의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표지석.2021.4.2/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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