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마을 작은 도서관 (구)제주민속박물관에는 제주민속유물들이 제주를 지키고있다.
- 돌 文化의 은인 판관 김구선생을 재조명하다.
- 196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6년전에 제주 최초로 진성기 관장님(1936년 출생)이 사설 (私設 개인) 제주민속박물관을 설립하였다.
민속학자이신 진성기 관장님이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많은 소장품들을 기증하면서 지금은 제주시 삼양3동 2505(일주동로 293-1)에 위치한다.
마당 왼쪽에 위치한 김구선생공덕비에는 제주의 돌의 역사를 새로 접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김구선생은 고려 고종19년 단기 3567년 제주판관으로 부임하여 5년간 재임하는 동안 많은 선정을 베푸신가운데 특히, 제주삼다의 하나인
돌을 잘 다스려돌 문화의 은인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오랫동안 칭송 되어오는 어른이시다.
김구선생 공덕비를 통하여 놀라움과 새로운 사실에 있어서 다시 한번 재조명 되길 기대한다.
제주의 돌담의 원조를 만드신 공덕비 내용의 앞면 모습이며, 1991년에 세워져있다.
뒷면에 기록된 것은 다음과 같다.
"돌을 주어 모아 경작지의 경계선을 만들고 집집마다 돌담을 쌓아 두도록 하였다.이렇게 새로 쌓은 밭담과 집의 울담은 소유하고 있는 땅의
경계 표시가 되어 서로의 다툼을 없애주는 구실을 해주었고 소와 말이 침입으로부터 농작물이나 울안을 보호하는 방법이 되었다. 또한 방풍
구실도 해주어 풍다(風多)로 인해 바람의 피해를 입어오던 제주도로선 돌의 처리로 말미암아 농토도 넓어지는 효과를 얻었으니 선생의 돌 처리 방법으로
도민들로서는 실로 일석사조의 혜택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김구의 본관은 부안이며 어려서부터 시문(詩文)에 능하였고, 고려시대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제주판관(濟州判官)이 되었다.
선생의 판관 부임당시 제주도는 돌이 사방에 흩어져 있어 농토이용이 낮았을 뿐만 아니라 경작의 경계가 없어 이웃간에 다툼이 많았고
또 가축을 놓아 기르다 보니 가축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가 많아서 농사에 많은 불편이 있었다. 오른쪽에 기록된 것은 다음과 같다.
"주민의 삶의 역사와 더불어 길이 남아 향기로우실 것이다"라고 적혀있다.(글 제주민속박물관 관장 진성기 글)
지금은 일부 자료와 악기,한지,가죽공예,수석,우리가 쓰다가 버리는 옛날 물건들이 가득하다. 이게 바로 "UP Cycle"을 전문 주제로 한 '한라마을 작은 도서관'으로 개편 운영중이며 김동호 관장이 운영중에 있다.
또한 "UP Cycle"쓰레기를 이용한 재창조 현장"
인상적인 것은 오른쪽 하단에 "돌하르방이 눈이 빨간이유는 제주가 환경파괴되고,바다가 쓰레기로 넘처나서 돌하르방이 분노하여 눈이 빨갛다"고 말한다.
환경을 지키는 재활용을 통하여 제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소중한 체험장이 바로, 한라마을 작은 도서관이다.
제주의 꿈을 위하여 옛것을 보호하고 지키는 일에 전념하고있는 김동호 관장님의 소박한 제주민속유물들을 지키는 모습이 오직 감동이다.
한라마을 작은 도서관은 제주의 가치이다. 화북동에서 삼양방면으로 일주도로를 따라 다리하나를 건너면 만나는 작지만 작지 않은 제주의 가치를 담고있는
"UP Cycle"을 전문 주제로 한 쓰다버린 것들을 주섬 주섬 모아서 다시 태어난 물건들로 가득하다.
앞으로 제주 신서란을 이용한 미래가치가 매우 높고, 연구 개발하여 제주의 제주전통공예를 이끌 중요한 신소재라고 김동호 관장님은 강조한다.
제주의 맥을 잇고, 제주의 전통을 부활 할 수있는 중요한 제주 신서란을 사용해 망태기 등 생활용품을 만들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동호관장이 직접연주하는 가야금소리에 아리랑의 노랫소리가 구성지고 가슴을 울린다.
한라마을작우도서관 탐방문의? 관장님이 직접안내를 받으실수있다. 010-3694-0567 김동호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