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안선 제주도농업기술원 비정규직 해고자.
▲ 오안선 제주도농업기술원 비정규직 해고자.

 농업기술원에 처음 입사한 해는 2008년 봄이었다. 오누이의 엄마로 가정주부로 생활하던 나에게 제주도농업기술원은 첫 직장이었다.

 농촌에서 태어났고 자랐지만 정작 농사일은 눈으로만 봐왔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사람을 모집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망설임없이 응시했다. 특히 제주도 농업을 육성하는 신품종 종자 생산 등의 연구보조업무가 매력적이었다. 일하다보면 많은 보람도 생길 것으로 기대했다.

 그렇게 제주도농업기술원에 처음 입사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서툰 농사일이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 언니들의 도움을 받으며 농사일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갔다. 그렇게 흘러간 지난 10여 년 동안 많은 작물들을 재배하고 시험해왔다. 풍산 콩, 호품 보리 종자 생산 및 지역적응시험, 그리고 유채, 참깨, 밭벼, 조, 들깨, 팥, 기장, 고구마, 메밀 등 대표적인 제주도 밭작물들을 연구보조 해왔다.

 그러나 나는 비정규직이었다. 언제든지 나가라면 하소연조차 못하고 쫓겨나야 하는 계약직 노동자였다.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연구사님 밑에서 10년을 일해 왔지만 비정규직이라는, 계약직이라는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언제 다시 재계약이 돼서 일할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었다. 연말까지 일하고 나면 다음 해 봄까지 기다려야 했다. 2016년 이후에는 연말부터 다음 해 여름까지 9개월에서 10개월씩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2017년 7월 20일, 정부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책이 발표되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발표였다. 하지만 나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정부 발표가 나온 시점에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7월 말일까지가 계약기간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같이 일하던 다른 기간제 계약직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업기간이 정해진 한시적 사업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하루라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농사일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특히 제주도의 토양에 맞는 신품종을 개발하고 새로운 종자를 생산해내며 지역적응시험을 하는 업무가 어떻게 한시적일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의 품종을 생산해 농가에 보급하기까지 최소 3년 이상 길게는 10년이 걸리는데도 말이다.

 제주도농업기술원은 계속해서 계약기간을 연장하면서 사용할 수 없으니 3개월만 쉬었다가 다시 출근하라고 했다. 내가 쉬고 있던 3개월 동안 일시사역 일자리를 만들고 다른 분들이 업무를 이어 나갔다. 한시적인 사업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업무는 상시적이며 지속적으로 쉼 없이 계속 유지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3개월을 쉬었다가 11월부터 다시 출근했다.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업무를 담당했다. 그런데 이제는 계약기간이 훨씬 짧아졌다. 계약기간이 7개월 미만으로 짧아졌다. 그리고 재계약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동안 농업기술원에서 근무해왔던 경력을 이력서에 기재하면 안된다고 했다. 계속 일하려면 농업기술원 경력을 제외한 다른 경력을 기재하라는 것이었다. 10여 년간 일을 해온 경력을 쓰지 못하는 채용조건?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10여년을 일해 왔던 농업기술원 재직경력을 쓰지 않아야 일할 수 있다는 황당한 조건앞에 말문이 막힐 뿐이다.

 열심히 근무하다 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 하며 묵묵하게 일해왔던 모든 기대와 희망도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희망고문’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일까? 기대와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제주도농업기술원이라면 어느 누가 일하며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제주도민에게 여쭙고 싶다. “10년을 일해 왔던 재직경력, 감히 버릴 수 있겠습니까?” “재직경력을 이력서에 쓰지 말라는 요구, 납득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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