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희 시인 기자회견, '제7회 4.3평화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자의 양심고백'
“詩 부문 당선작에서 (4·3의 아픔을 느낄 수 없어) 많이 놀라고 슬펐습니다”

▲ 신태희 시인.
▲ 신태희 시인.

 올해 제7회 4·3 평화문학상 시 부문 최종심에 올랐던 신태희(49) 시인이 4일 오전, 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4·3평화문학상 당선작 선정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신태희 시인은 “이번 4·3평화문학상 당선 시 작품에서는 4.3의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며 “이렇게 당선작을 낼 바에는 아예 4.3평화문학상은 폐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신태희 시인은 “제가 읽기에 시 부문 당선작은 단편적인 문장들의 블록 쌓기에 불과한 작품이었다”라 비평하면서 “거금 2천만 원이 수여되는 평화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에서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4.3을 느낄 수 없다면 4.3 유족들을 위해 쓰여져야 할 예산이 낭비되는 격이라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태희 시인은 "밀실에서 이뤄지는 심사과정은 심사위원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고를 수밖에 없다는 게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라 하나 심장이 있다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심사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느끼나, 혹시 끼리끼리 심사라 느끼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신태희 시인은 “대개의 문학상, 상금 액수가 큰 문학상의 경우에 공공연한 비밀이다. 질문하시는 기자분들만 모르시는 것 같다. 그동안 6년 동안 응모해오면서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어렴풋이, 희미하게 드는 것도 사실”이라 토로했다.

 그러면서 신 시인은 ‘다만 시를 쓰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자회견까지 나서게 된 점이 무척 안타깝다”는 마음을 함께 전했다.

 다음은  이날 신태희 시인의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제7회 4·3 평화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자의 양심고백

 저는 시를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4·3평화문학상에 공모를 해온지 벌써 만 6년이 흘렀습니다. 2회, 5회, 7회 최종심에 올랐지만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제가 지금 이곳에 나온 이유는 제 시가 수상작보다 낫다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이번 수상작에 대해서 사실은 많이 놀라고 슬펐습니다.

 저는 제주에서 어느 문학단체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저는 시를 쓴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제주에 산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제주에 살면서, 제주의 아픔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픔을 알고서는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인은 세상의 아픔과 불의를 보고, 시를 쓰며 슬픔을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침묵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도, 나서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아 고민했습니다.

 제 기자회견으로 상황이 바뀌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잃을 것이 없어서 두려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최종심에 올랐던 공모 시 10편 전부를 첨부합니다. 읽으시고 꾸짖어주실 것은 호되게 꾸짖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제 컴퓨터 안에만 저장되어 있던 시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계기가 ‘기자회견’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는 다만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신태희 시인은 기자회견문에 ‘제7회 제주 4.3 평화문학상’에 응모했던 자신의 시 작품 ‘흙의 노래’ 외 9편도 모두 첨부해 공개했다.

 흙의 노래

굴 속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달을 뱉어낸 다랑쉬 입 속에서
어둠을 씹어 먹으며
어둠을 견디는 검푸른 이끼처럼 사람이 살고 있었다
동굴 천장에 맺힌 물로 쩍 갈라지는 혀를 적시던 나날에도
곧 다시 흙의 노래를 부르리라고
씨도 뿌리고 검질도 매고 낟알도 거둘거라고
쇠스랑이며 괭이며 나대며, 숫돌까지 짊어지고 온
소처럼 둥근 눈망울이 있었다
지난 밤, 어수선한 꿈자리
얼레빗으로 빗겨 내리며
꺾어진 놋숟가락으로
캄캄한 아침을 뜨던 사람이 있었다
굴 앞에 짚불을 놓는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
매운 연기로 좌우를 구분 못할 때
귀와 코로 솟구치던 피,
울퉁불퉁하게 굳어버린 검은 용암 틈 사이로
붉디붉은 비명이 뜨겁게 흘러내렸다
쇠스랑, 괭이, 나대는 녹으로
몸을 부풀리고 부푼 만큼 허물어졌다
죽어서도 흙에 눕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죽어서도 좌우를 모르는데
망망한 바다에 함부로 뿌려졌다
굴 속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가끔씩 못다 부른 흙의 노래가 굴을 빠져나와
쇠스랑, 괭이, 나대의 별자리를 찾아보곤 했다
숫돌에 간 별들이 캄캄한 밤 이랑을 갈고 있었다


 터

무산 무사라
물들지 못허게 허연 심었주

돌담 옆,
양애가 우북하다

양애 뿌리가 서로 몸을 엮어
지셋물 막아주던 초가는 어디로 갔을까
양애가 움켜쥔 흙은 푸르른 잎사귀로 펼쳐지는데
새로 덧덮은 이엉으로 뿌듯해하던 초가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멀쩡한 독새기도 양애밭에 굴럼시면 뱀알인 줄 알고 손도 안 대던
빌레가름 초가에 살던 겁 많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양앳불 일어나면 서둘러 따던 그 투박한 손들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자줏빛 꽃대를 촐레 삼아 먹던 따듯하고 어둑신한 저녁
낭푼밥상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대나무는 뒤란에서 뿌리로만 서럽게 기어가고
양애꽃 화들짝 피어나는데
해와 달이 놓쳐버린 사람들
다들 어디로 저물었을까

몰고랑에 수북한 서러움의 낱알
웃돌과 알돌만이 드렁청한 터라는 이름의 집(集)

 

동지팥죽이 오는 밤

산귤나무 노랗게 얼어붙은 그림자와
꽝만 남은 어욱 식은 이마와
오시록헌 비탈 내려오는 여윈 노리의 등과
까무룩 잠든 두테비 불룩한 울음주머니와
아흔아홉골 목구멍을 긁어대는 가마귀 비명과
된바람 돌부리 넘어 어울렁더울렁 온다
얼어서 부풀어 오른 발 허공에 찍으며 흘락흘락 온다
들뜬 창호지 부르르 우는 밤, 희읍스름히 온다
깡마른 수리대 빈몸이 불땀 들이며 텅텅 터지던 솥덕
팥물 든 어둠이 숭얼숭얼 길게 끓어 넘친다
섯알오름으로 덜컹거리던 트럭 위
마지막을 짐작한 살아있는 자가 징표로 던진
별표고무신 한 짝 댓돌 위에 돌아와 글썽인다
창호지에 수런거리는 배고픈 그림자들
겨울 하늘이 궁글려 빚어놓은 새알심 하나
맨도롱허게 부풀어오른다
되직하게 익어가는 동짓날 긴긴 밤

 

 헛묘

떠도는 자들의 섬이다

바람의 자물쇠로 잠긴 섬이다
섬 밖으로 당신의 옷이 자꾸 웃자란다

충혈된 눈동자 속으로 솔기는 툭툭 터져 실밥을 물고
끝내 당신을 벗지 못하는 무명저고리는 매번 없는 당신을 아프게 껴안는다

당신의 언 뺨은 오래 서쪽으로 지고
볼레오름 닿는 자리마다 뜨겁게 허는데

등핏불 아래 바늘로 귀를 세워
당신의 몸피 아슴아슴 더듬어가며 이쪽과 저쪽을 다시 꿰매는 밤

칠성판 북두칠성 쏟아지는 고망마다
마맛자국 환한 달빛을 건져 한 사리씩 곱게 틀어놓는 억새꽃

핏방울로 내달리던 정방폭포 거슬러 올라
동광리 삼밭에 닿은

당신이라는 허름한 지느러미가 슬어놓은 섬 하나


 사리

갯가에 아무렇게나 봄빛이 부려지고 있었다

어린 미역이 잇몸을 부벼대는 월령리 앞바다에
키우지도 않았던 슬픔이 당도했다

오랫동안 먼 바다를 끌고 온 손바닥은
가시를 내면서 먼저 가시에 찔리고

마을에는 해무 짙은 말들이 헝클어져 여러 날 떠다녔다

가시를 지나, 가시를 지나
속울음 글썽이며 피어올리는 것을 사람들은 꽃이라 했다

햇살 아래 곱아진 손가락 관절을 펴 손을 모은다
아귀가 채 맞지 않은 합장 사이로 지나가는 희디 흰 무명의 바람

붉게 젖은 울음덩어리가 수평선 목울대에 걸린다

가시에 박혀 꼼짝없이 앓다가 내놓은
자줏빛 사리

사리 속, 끈적한 피눈물로
오래된 마른기침을 눅이는 사람들이 바닷가에 살고 있다


 개토(開土)

사레들린 땅이었다

부옇게 흔들리는 흙먼지 사이로

삽날에 찍힌 거먕빛 어둠이 울컥 쏟아진다

놀란 흙이 딸꾹질을 한다

빠져나간 몸을 붙잡고 있던 흙의 손가락이 하나, 둘 펴진다

토압에 금이 간 빗장뼈에 봄볕이 헐겁게 걸린다
두서없이 뒤엉킨 이백오십 아홉 개의 두개골

퀭한 눈물뼈에 고인 젖은 흙을 털어낸다
하염없이 욱여넣은 말줄임표에 다물어지지 않는 위턱과 아래턱

어긋난 뼈의 문장은 오자와 탈자로 빼곡하다

문득, 흘러나온 뭉툭한 연필 한 자루와 교복 단추
쓰고 싶어서 놓지 못했던 시간은 모조리 흙빛이었다

앙가슴 깊이 박힌 총알이 녹슨 마침표로 찍히는데
수천, 수백의 비문으로 날아오르는 정뜨르 민들레 꽃씨

 

 옛날 옛날 썩은섬에서

버스 정류소 팻말을 스쳐
하루 두 번 열어주는 바닷길 따라 걷는다
쓰레기로 산을 이루었던 난지도는
온갖 악취로 들끓었을 때조차
난의 향기라 불리웠는데
서귀포 강정동 썩은섬은 쓰레기 한 점 갖지 않아도
썩은섬이라고 불리운다
온갖 누명 둘러쓰고도 머리칼 멋쩍게 쓸어올리는 꼭 그런 사람 같다
검게 타들어간 돌들 아래 방게가 바쁘다
썩은 세상 속, 썩은 섬이라고 썩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다친 저 맘
간질이는 방게의 투명한 다리만 바쁜데
썩는다는 것은 어디론가 몸 바꾸는 일
썩어서 향기롭게 잘 썩어서
어느 맑은 봄 날,
아기 엉덩이 같은 섬 하나 쑥 밀어 올리면
그 섬에는 노란 애기똥풀 가득 손 흔들고
애기똥풀 돌보아주는 할미꽃들 주름잡고
썩은 섬이라고 남새 하나 못키우는
썩은 섬이라고 비웃던 사람들이 살았더라고
옛 이야기 탯줄마냥 꾸물럭, 쏟아져 내리는 그런 생각하다가
썩은섬 돌아나오는데
어라
썩을 섬!
부푼 배 한 아름 안고 달빛 아래 눕는다

 수유

집이 짖는다, 컹컹
서까래를 드러낸 초저녁
장기를 걷어낸 뱃속으로 밀려드는 환한 허기
뜯겨진 꽃무늬 벽지에 말라붙은 어느 저녁,
던져진 늦은 밥상이 만들어낸 암모나이트 나이테
손을 잃어버린 두족류의 슬픔
옹송그린 등은 딱딱해지고 물결소리를 업는다
아버지의 몸속엔 나선의 미로가 보였다
미로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휘파람 소리
그 미로 끝에서 만난 아버지에 푸른 붓
아버지가 발로 그린 꽉찬 면 분할의 그림 한 점
푸슬푸슬, 구멍난 별에서 흙이 떨어진다
질서 없이 떨어지는 질량의 법칙
자다 일어난 하현달이 잔뜩 웅크리며
무너진 것들 아래,
수유를 시작한다
뱅그르르 젖이 돈다

 

 비설의 주문

섣달 밤은 낱낱이 깍아지르는 천 길 벼랑
애기를 들쳐업은 어미의 푸들거리는 맨발
마른버짐으로 번지는 어린 것의 울음
턱끝까지 몰아치는 밭은 숨이 허옇게 얼어붙는다

설운 애기, 설운 애기야
어미라는 물옷 입고 세상으로 잠박질 해 온 애기야
열 달, 물로 지은 옷에선
비릿한 달 냄새가 났지

큰 바람이 일제히 쌓인 눈을 뒤집는다
뒈싸진 눈바당 흰 이빨에 물어뜯긴 언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이 갈기갈기 찢긴다
푸드득 날아오르는 몇 발의 총성, 목덜미에 더운 김을 뿜는다

설운 애기, 설운 애기야
어미라는 물옷 입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글라
불가사리 별이 뜨고 산호초 아름다운 숲
짓누르는 하늘 버리고 잠박질로 건너글라

뒤척이던 거친오름 깊은 숨 몰아쉬고
바당되어 몸져 누워 버린 밤
어미의 피멍 든 마지막 발자국 웅크려있다, 점점홍
눈바람에 쓸려간다

숨죽인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 일제히 날아오르는 희디 흰 숨비질소리


수산에 들다

어둠의 그물을 짜는 땅거미의 등 그 곳에서 흘러나오는 사방연속무늬가 물비린내를 부풀린다 이따금 몸을 트는 팽나무 아래 저수지 두 겹의 그물이 드리워지면 저 물 아래 마을 온통 웅성거리며 헤집는 소리 파드득 걸려든다 우물 있던 자리 다시 물 고이는 소리 허벅에 물 채우는 분주한 손길 그 손톱 봉숭아 꽃물이 기다리는 첫눈 내리는 소리 애기동백 숨골 팔딱이는 소리 콩국 부르르 끓어넘치는 소리 말방에집 말이 씩씩 더운 김 뿜으며 발 구르는 소리 저수지 위로 피어오르는 희부연한 안개가 물 위를 덮고 마을을 덮는 사이 몇 마지기 땅을 밀가루 몇 포대로 뺏겨버린 덕구 아방 아직 떠나지 못하는 발자국이 그물 사이로 흩어지면 천 개의 야윈 달이 서(西)로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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