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김종철 역작 『오름나그네』(전3권) 완전개정판이 세상에 나왔다
사진은 1960년대부터 김종철과 함께 숱한 오름 다닌 고길홍이 맡아
유홍준, “제주의 신이 그에게 내린 숙명, 그가 아니면 해낼 사람 없다”
김종민, “『오름나그네』표절하지 않으면 결코 오름을 묘사할 수 없다”

 

 물결치는 제주의 지문 ‘오름’에 대한 모든 것을 담다

 3월 25일, 제주 오름의 영원한 바이블, 원전(原典)이라 할 수 있는 『오름나그네 – 제주의 영혼, 오름을 거닐다』 완전개정판(전3권)이 출간되었다.

 제주섬 어디를 가나 오름이 없는 곳이란 없다. 물결처럼 너울거리는 오름들의 능선으로 빚어진 제주에서 오름은 곧 제주의 영혼이다. 우리가 제주에 있다는 것은 곧 오름의 바람을 맞고, 오름의 울림을 느끼고, 오름의 소리를 듣고, 오름의 향기를 맡는다는 의미다. 김종철의 『오름나그네』는 이러한 오름을 다룰 때 반드시 거치게 되는 관문이자 궁극으로 자리한 책이다.

 유홍준은 이 책을 두고 “제주의 신이 그에게 내린 숙명적 과제”라 표현하며, “김종철의 『오름나그네』가 없었다면 나는 오름의 가치를 몰랐을 것이다. (…) 그가 아니면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라고 쓴 바 있다.

 지난 1995년에 나온 책을 햇수로 2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세상에 내어놓는 까닭은 이 책 자체가 오름의 발견이고 우리가 아는 오름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널리 알려져 흔히 찾아가는 곳이지만 이 책이 쓰여진 199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오름은 뭍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제주에서조차 본디의 모습이 잊혀가던 존재였다. 저자 김종철은 지도에도 올라 있지 않고 진입로도 없는 330여 개 오름을 다니며 집필한 최초의 오름 답사기 『오름나그네』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오름의 모습을 완성했다. 지금도 무수한 사람들이 그의 발자취를 따라 오름을 찾고, 배우고, 새로이 발견하고 있다.

 생명과 맞바꿔 펴낸 『오름나그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저자 김종철은 신문사와 방송사의 편성부장, 편집국장 등을 두루 거친 언론인이자 산을 미치도록 사랑한 산사람이었다. 제주산악회를 창립하고, 국내 최초 민간 산악구조대의 초대·2대 대장을 맡았으며 한라산에 1천 회 이상 올랐다. 그는 숙명처럼 매주 신문에 「오름나그네」를 연재하게 되었고, 운명처럼 오름에 매혹되었다.

 쉽사리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오름을 알아가는 과정은 치열했다. 먼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와 조선총독부, 미군이 제작한 지도 등을 면밀히 살폈다. 다음으로 지명 관련 문헌과 오름이 위치한 마을을 다룬 조사보고서는 물론 신화·전설집과 각 성씨의 족보까지 구할 수 있는 모든 문헌을 섭렵했다.

 직접 오름에 다니면서는 지도에서 읽어낸 부분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비문에 새겨진 글을 기록하고 식물을 채취했다. 또한 마을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오름의 본래 이름을 찾는 일은 반드시 했는데, 한자명에 가려진 우리말 이름을 되살려내기 위함이었다.

 연재를 끝마친 저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늑골암 말기로 회복 불능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연명 치료를 거부한 채 원고 정리에 몰두하여 자신의 생명을 옮겨 담듯 제주 전 지역의 오름을 아우른 『오름나그네』(전3권)를 펴냈고, 책이 나온 지 20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제 오름나그네는 생전에 그토록 사랑하던 한라산 선작지왓에 묻혀 오름 왕국을 내려다보고 있다.

 잠들어 있던 제주의 오름을 호명하여 불러내다

 오름은 화산섬 제주의 정수(精髓)이고, 오름을 이해하는 것은 곧 제주를 이해하는 것이다. 오름은 잘 정비된 관광지이기 이전에 제주신화의 거신(巨神) 설문대할망이 창조한 성스러운 곳이자 제주의 삶의 터전이 되어온 장소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 자락에 소와 말을 놓아먹이고, 샘물을 떠 마시고, 약초를 캐며 살았다. 오름은 제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진 지문인 셈이다.

 저자는 오름이 가진 저마다의 특성과 생명력을 오롯이 드러내고, 자연 그대로의 오름을 넘어 오랜 세월 사람의 삶과 엮여온 모습을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마침내 그는 늘 존재했지만 잠들어 있는 것과 다름없던 제주의 오름들을 흔들어 깨워 우리 앞에 불러냈다.

 『오름나그네』에는 역사·인문·자연·민속·생태까지, 제주도의 모든 것이 총망라돼 있다. 오름 명칭의 유래와 위치를 비롯해 오름에 얽힌 신화, 전설, 고어(古語) 등 방대한 자료를 아우르고 식생(植生), 기상, 지질 등 자연과학적 사실도 꼼꼼히 기록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의 잔재와 4·3사건의 흉터, 품을 가로지르는 도로와 골프장 흙으로 떠내어진 가슴팍 등 오름의 상처까지 보듬고 있다. 오름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스함과 비판적 관점을 갖춘 시선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우리의 태도를 반추하게 한다.

 “그가 저 외진 들녘 멀찍이 있던 오름의 손을 잡아 우리 앞에 이끌어 온 까닭은 오름이 이토록 아름다우니, 이토록 소중하니 진정으로 사랑해 주고 아껴 달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오름나그네』의 행간에는 간곡한 그의 육성이 올올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그런 오름사랑에 부디 동참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 「재출간에 부치는 글」 중에서

 제주의 영혼, 오름 왕국을 거닐 때 우리는 모두 오름나그네가 된다

 『오름나그네』는 촘촘히 짜여진 오름 사전으로, 지역별 오름 이야기와 사진, 지도, 오름 일람표, 찾아보기 등이 그물처럼 촘촘하게 엮여 있어 길 잃을 걱정 없이 오름 왕국을 마음껏 누비도록 이끌어 준다. 이번 완전개정판에 새로이 실은 사진은 오름나그네가 연재되기 전부터 저자와 함께 오름을 다녔고, 1960년대부터 50년간 오름의 모습을 촬영해온 사진가 고길홍의 작품이다. 저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듯한 사진 속에서 오름들은 가장 그다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지금은 조림사업으로 온통 나무에 덮인 오름의 맨살과 고유의 능선, 다시는 볼 수 없을 제주의 옛 풍광을 바로 여기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오름에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다채로운 야생화 사진도 함께 수록했다.

 탄탄한 보고서의 성격을 지녔음에도 이 책이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저자의 유려한 문체와 따스한 시선 덕이다. 땅에 나부죽이 엎드린 오름과 우뚝 솟은 오름, 잔자누룩한 오름과 웅장한 오름까지 “크기가 크든 작든, 오름은 저마다의 몸짓으로 다가온다. 모양새, 차림새가 저만의 것 아닌 것이 없다.”는 그는 오름이 간직한 숱한 이야기에 다정히 귀 기울인다. 그의 따듯한 문장을 건너 아스라하던 오름의 모습이 눈앞에 선연히 살아온다. 오름나그네의 발자국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오름 왕국을 거닐 때, 우리 모두는 비로소 오름나그네가 된다.

 김종민(농부, 역사공부 하는 사람)은 추천사에서 “『오름나그네』를 표절하지 않으면 결코 오름을 묘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김종철金鍾喆 1927~1995

김종철.
▲생전의 김종철(1927~1995).

 

 1927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제주신보』를 시작으로 『제주신문』, 『제남신문』, 제주KBS와 제주MBC에서 편성부장, 편집국장 등을 두루 거쳤다.  한라산을 1천 회 이상 등반하는 등 산을 미치도록 사랑하여 평생 산과 더불어 살았다. 제주산악회를 창립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산악구조대인 제주적십자산악안전대 대장으로서 많은 인명을 구했다. 1990년부터 뭍에는 낯설고 제주에서조차 잊혀 가던 오름에 대한 답사기를 연재하여 오름의 속내와 거기 깃든 인간의 삶, 제주의 모든 것을 길어 냈다. 당시 일본 문화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치의 『제주도』를 번역하기도 했다.
연재를 마친 그는 암과 투병하면서도 원고 정리에 몰두했고 『오름나그네』(전3권)를 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감았다. 그의 유해는 생전에 그토록 사랑하던 선작지왓의 탑궤 주변에 뿌려졌다. 이제 오름나그네는 그곳 한라산에 잠들어 영원히 오름 왕국을 거닐고 있다.

 

 

 

사진 고길홍高吉弘

 사진작가. 1943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오름나그네 김종철과 함께 숱한 오름을 다녔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제주와 오름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 사진전 9회 개최
 - 사진집 『한라산漢拏山』 출간
 - 제주적십자산악안전대 대장 역임

 -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 역임
 - 대한민국사진대전 초대작가

 ◆ 도서출판 다빈치 刊. 신국판(152x225mm) 양장본 세트+북케이스 620여 컷 수록(컬러 도판 250컷, 흑백 도판 370컷), 총 1464쪽(1권 440쪽, 2권 432쪽, 3권 592쪽), 값 110,000원(전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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