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근 / 제주시 기획예산과

▲ 오동근
▲ 오동근

 

 어느덧 청량해진 바람이 기운차게 구름을 걷어내자 기다렸다는 듯 맑게 갠 하늘이 푸른 미모를 드러낸다. 순간, 하늘의 미모에 반해 날아오르려던 나뭇잎들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더러는 사람들의 발자국 사이로 낙하하며 여름과는 다소 이질적인 계절의 정취를 만든다. 갑작스럽게.....가을이다.

 더위가 길었다. 그리고 그 더위 속의 무기력함은 맹렬했다. 무기력함을 떨구고 새롭게 의지를 찾아야 할 시간이다. 첩첩산중에 기거하다 시장을 처음 본 나그네처럼 여기저기 관심사가 될 만한 것을 기웃거려 보지만 무언가 강렬한 끌림이 있는 것을 찾지는 못하겠다. 살아온 날이 많아질수록 모든 것은 일상에 수렴해 가는 것 같다.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가장 일상적인 것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책을 읽기로 했다. 오랜만에 책꽂이를 독대하니 감회도 새롭거니와 그 풍경이 참 가관이다. ‘주식차트의 기술’, ‘투자 아이디어’, ‘부동산경매 이렇게 쉬웠어?’, ‘기업이 알려주지 않는 101가지 진실’ 지식의 향기가 피어나기는커녕 기계식 계산기가 그 특유의 틱틱대는 소리로 타악의 향연을 펼치는 것 같다. 월급이 스쳐가고 소박해진 계좌를 생각하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독서도 아니다’라는 깨달음과 함께 의기소침해졌다. 뭐 하나 의지를 발현할 거리가 없으니, 좀 더 솔직히 말해 의지가 변변치 않으니 노자(老子)처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몸소 실천해도 좋을 듯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과 무언가를 하려하는 나를 경계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가을에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려는 나의 강박을 경계하기로 했다. 노자급의 결론을 내린 나 자신에 감격해 어깨가 으쓱거렸다.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빨래를 개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깨달음을 전파할 시간이다. “빨래를 왜 꼭 개야 할까? 빨래 본연의 모습으로 널부러져 있으면 안 될까?” 아내는 한심하다는 듯 말을 받는다. “당신도 탄생의 순간처럼 목청껏 울어보고 싶은 거지?” 우문현답에 감격하고, 다가오는 아내의 기운을 경계하며 자연스럽게 빨래의 각을 잡았다.

 가을이라고 딱히 다를 건 없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필요도 없고, 애써 독서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주변 사람들의 일상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사색하고, 가족의 말을 잘 들으면 행복한 계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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