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 밤 11시 트레일러닝 행사 출발
“임재영 기자, 한국인 최초 대회 도전한 완주자“

29시간24분4초. 임재영 동아일보 제주주재 기자가 직접 스페인 그란카나리아 섬에서 열린 19회 트란스 그란카나리아(Trans Grancanaria) 125㎞ 대회에 참가해서 얻은 기록이다.

2월23일 오후 11시(현지시간) 그란카나리아 북부 라스 칸테라스 해변을 출발, 한숨도 자지 않은 채 레이스를 펼친 끝에 25일 오전 4시24분경 마스팔로마스 결승선을 통과했다. 임 기자는 한국인 처음으로 이 대회에 도전해 최초 완주자가 됐다.

이 대회는 국제트레일러닝협회(ITRA)가 인증한 울트라트레일 월드투어(UTWT) 시리즈 대회로 스페인 최대 규모 트레일러닝 행사다. 트레일러닝은 산, 들, 계곡, 사막 등 주로 비포장을 달리는 아웃도어 스포츠. 거리 100㎞이상이 UTWT 대회 기본 요건의 하나다.

대회가 열린 그린카나리아 섬은 화산폭발, 관광휴양지, 자연풍경 등에서 제주도와 닮았다. 트레일러닝 붐이 일기 시작한 한국 특히 제주로서는 벤치마킹할 부분이 많았다.

다양한 국적의 886명(남자 787명, 여자 99명)이 125㎞대회 출발선에 섰다. 북쪽 해발 1m에서 출발해 1900m가량의 코스 최고 지점을 지난 뒤 다시 남쪽 해안으로 내려오는 섬 종단 코스로 짜여졌다. 10개의 산 정상이나 봉을 오르내리는 지나는 동안 오르막을 합한 누적 고도는 7500m에 이른다.

한라산 성판악코스로 백록담 정상을 7번 가량 왕복해야하는 난도다. 출발시간이 이례적으로 야간이다. 참가선수에게 웅장한 섬의 장관을 보여주고, 다음날 낮에 골인하는 엘리트 선수들의 레이스 시간 등도 고려한 듯 했다.

정열적인 나라답게 응원은 뜨거웠다. 해변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은 마지막 선수가 지날 때까지 힘찬 박수를 보냈다. 일부는 축구경기 응원에 쓰는 ‘부부젤라’를 열심히 불어댔다. 도심을 벗어나자 하늘에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달 주변으로 오리온 별자리가 선명했다. 이방인을 경계하는 개 짖는 소리가 주택가에 울려 퍼졌다. 주택가나 산길에 계단이 없는 점이 흥미로웠다. 호우로 인해 흙이 쓸려 내려가 길이 파이는 것 등을 방지하려고 계단을 설치하는데 그란 카나리아 섬은 비가 적은 건조지역이다 보니 굳이 계단을 만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길, 자갈길로 만들어진 후반 일부 구간은 예외지만 대체적으로 계단은 상당히 적었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주변 경치가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모습의 선인장이 곳곳에 자리 잡았고 제주에서 자라는 손바닥선인장도 보였다. 다육식물인 사기린 유포르비아, 오방락 아이오니움은 그란카나리아가 원산지답게 쉽게 눈에 띠었다.

주택가 주변에서는 용설란, 비파나무, 감귤나무, 레몬나무가 자랐다. 출발한 지 40~50㎞ 구간 능선 길과 돌담 등은 제주의 오름(작은 화산체) 풍광과 유사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풍광은 더욱 수려했고 협곡이 깊은 탓에 산세는 험했다. 계곡 사이 곳곳에 파이프를 설치하거나 홈을 파서 수로를 만들었다. 물이 귀한 섬에서 고지대 식수나 농업용수로 활용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란카나리아 특산인 탁구공 크기 조그만 감자를 생산하려고 계단 농사를 짓는 모습도 보였고 거대한 암벽에는 창고로 쓰거나 원주민이 살았을 법한 인공 동굴이 이색적이었다. 이런 풍광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계곡 밑과 중간에 마을을 형성한 테헤다 지역은 지름 20㎞ 규모의 거대한 분화구(칼데라)였다.

해발 1800m지점에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았다. 섬 랜드마크 하나로 ‘구름 바위’라는 뜻을 지닌 로케 누블로. 높이 67m로 다가갈수록 웅장함이 더했다. 주변으로 바다 풍경도 조망이 가능하다지만 구름에 가렸다. 체크 포인트(CP)를 통과해야하는 최종 시간이 임박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이번 레이스 CP는 모두 10개소. 도착 시간을 재서 제한 시간을 넘기면 참가선수는 레이스를 더 이상 하지 못한다. CP에서 선수들은 잠깐의 휴식과 함께 식수와 음료, 간식 등으로 재충전한다.

어느덧 또다시 밤이다. 코스를 잘못 들었다가 되돌아오기를 10여 차례 하면서 체력소모가 컸다. 기계적으로 발을 움직일 뿐이다. 제한 시간 15~30분 정도만 남겨두고 아슬아슬하게 CP를 통과한 탓에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체력의 한계, 정신적 고통을 견디며 드디어 결승선을 밟았다. 886명 가운데 662등이라는 성적이지만 레이스를 완주한 데 의의를 뒀다. 완주율은 76.6%로 207명이 중도에 기권했다.

이번 대회에는 울트라 트레일러닝 세계 톱 랭커 5명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1위는 스페인 파우 카펠(노스페이스)로 12시간42분8초를 기록했다. 올해 125㎞를 비롯해 64㎞, 42㎞ 등 모두 6개 종목에 72개국 3900여명이 참가했다. 그란 카나리아 수려한 자연환경을 보여주고, 참가자에게 도전의식과 낯선 경험을 주려고 2, 3년마다 레이스 코스에 변화를 주고 있다.

:그란카나리아 섬:
트란스 그란카나리아 125㎞ 대회가 열린 그란카나리아는 스페인 라스팔마스 주에 딸린 1533㎢면적의 섬으로 ‘유럽의 하와이’, ‘유럽의 마이애미’ 등으로 불리는 관광휴양지이다.

제주도 면적 1849㎢와 비슷하고 섬 최고 고도인 페코데 니에베스(해발 1949m)는 한라산(해발 1950m)높이와 거의 같다. 화산 폭발로 섬이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섬 지하 물로 만든 먹는 샘물이 유명하고 1차 및 관광산업이 지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도 유사하다.

이 섬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한국 원양어업의 대서양 전진기지로 선원들이 피땀으로 벌어들여 고국으로 보낸 돈은 나라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1970년대 후반 그란카나리아 등 카나리아 제도에 원양어선 250척, 선원 8000여명이 활동했다.

이들이 20년 동안 벌어들인 외화는 8억7000만달러에 달했다. 독일 파견 광부, 간호사가 15년 동안 벌어들인 돈과 비슷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국 선원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라스팔마스 외곽 산나자로 시립공동묘역에 선원위령탑이 세워졌으며 선원 101기가 안치됐다.

저작권자 © 제주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