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시상금, 권위있는 문학상 입지 확보
<소설 정난주 마리아 – 잊혀진 꽃들>, 시〈취우翠雨〉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 당선작이 선정됐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현기영)는 지난 2월 28일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 본심사위원회를 개최하여 소설 부문 〈정난주 마리아 - 잊혀진 꽃들〉(김소윤, 1980년생, 전북 전주시 거주), 시 부문 〈취우翠雨〉(정찬일, 1964년생, 제주 서귀포시 거주)를 각각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4·3의 아픈 상처를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키고 평화와 인권·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작품을 기대하며 ‘4·3의 진실,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 발전’을 주제로 시와 소설 두 장르에 대해 2017년 7월부터 12월 20일까지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 작품을 공모한 바 있다. 공모 결과 해외(미국, 캐나다, 호주) 및 국내 15개 지역에서 총 231명이 응모했고 시 1,685편(135명), 소설 101편(96명)이 접수됐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심사지침>에 따라 2018년 1월부터 2월 28일까지 두 달 동안 예심과 본심사를 거쳐 당선작을 선정했으며, 시상금은 국내 최고 시상금인 소설 7000만원, 시 2000만원이다.

심사위원들은 “무엇보다 4·3정신의 문학적 형상화에 중점을 뒀으며 평화와 인권에 대한 전형성을 보여주는 작품에 주목했다”고 심사기준을 밝혔다. 당선작 《정난주 마리아 - 잊혀진 꽃들》은 1801년, 조선조 후기 천주학 사건(황사영 백서)으로 인해 제주도로 유배되어 관노비로 살게 된 여자 정난주의 비극적 일생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 부문 심사위원들은 “제주도의 역사와 풍토와 서민과 노비들의 학대받는 아픈 삶을 바탕하고 있는 이 소설은 제주도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고 오늘 부활시켜야 하리라 생각된다. 조선이라는 봉건시대의 변방에 놓여있는 제주라는 어떤 차별성을 정난주라는 한 여인의 핍진한 삶과 연결시키는 작가의 진정성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작가의 성실하고 개성있는 문체도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시 부문 심사위원들은 “70주년을 맞이한 4·3은 이제 물 위로 올라와야 한다. 4·3평화공원에 아직껏 이름을 짓지 못해서 ‘백비’로 남아있는 비에 마땅한 이름이 새겨져야 한다. 주먹을 쥔 결기와 투쟁적 언어로는 어제와 오늘, 내일을 열고나갈 시대를 어루만질 수 없다. 서정의 힘이 다시금 필요할 때다. 〈취우翠雨〉가 그러한 시적 성취와 함께 치유의 덕목을 고루 갖추었다.”고 평가했다. 〈취우翠雨〉는 4·3으로 잃어버린 마을 ‘삼밧구석’의 슬픔과 아픔을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한편 치유의 과정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 김소윤 씨 ⓒ제주인뉴스

소설 당선작가 김소윤은 1980년 전북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전북도민일보」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물고기 우산>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한겨레21」 손바닥 문학상에 단편소설 <벌레>가, 2012년 제 1회 자음과 모음 「나는 작가다」에 장편소설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가 당선되었다. 저서로 장편소설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와 단편소설집 <밤의 나라>가 있다.

▲ 정찬일 씨 ⓒ제주인뉴스

시 당선작가 정찬일은 1964년 전북 익산 출생으로 유년시절 이후 제주에서 활동했다. 1998년 <현대문학>에서 시로 등단한 뒤, 2002년 제2회 <평사리문학대상>에서 <꽃잎>으로 소설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유령>이 당선됐다. 시집 <죽음은 가볍다>와 <가시의 사회학社會學>이 있으며, 현재 다층 동인,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 본심사위원은 소설 부문에 김석희 소설가(번역가), 송기원 소설가, 한승원 소설가, 시 부문에 강은교 시인, 박남준 시인, 정희성 시인 총 6명으로 구성됐다. 예비심사위원은 소설 부문에 김숨, 김한수, 손홍규, 심윤경, 오수연, 한창훈 소설가, 시 부문에 김경훈, 박형준, 손택수, 안현미, 황규관 시인이 각각 참여했다.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상식은 3월 중 개최할 계획이며 당선 작품은 조만간 공식 출판을 통해 독자들에게 선 보일 예정이다.

제주4·3평화문학상은 제주특별자치도가 2012년 3월 제정해 제6회에 이르고 있으며, 2015년부터 제주4‧3평화재단이 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제주4·3평화문학상 제1회 수상작은 현택훈의 시 〈곤을동〉 ․ 구소은의 소설 《검은 모래》(2012), 제2회는 박은영의 시 〈북촌리의 봄〉 ․ 양영수의 소설 《불타는 섬》(2013), 제3회는 최은묵의 시 〈무명천 할머니〉 ․ 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2014), 제4회는 김산의 시 〈로프〉 ․ 정범종의 소설 《청학》(2015), 제5회는 박용우의 시 〈검정고무신〉 · 손원평의 소설 《서른의 반격》(2016)이다.

[시 당선작]
취우翠雨

봄비 맞습니다. 누가 급히 흘리고 갔나요. 밑돌 무너져 내린 잣담에서 밀려나온 시리 조각. 족대 아래에서 불에 타 터진 시리 두 조각 호주머니 속에서 오래도록 만지작거립니다. 손이 시린 만큼 시리 조각에 온기가 돕니다. 온기 전해지는 길에서 비 젖는 댓잎 소리 혼자 듣는 삼밧구석입니다. 푸른 댓잎에 맺힌 빗방울 속이 푸릅니다.

이 봄비 그치면 취우 속에 가만히 들어 한 밤 한 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

매 순간 모든 것이 흔들리고, 빛 속에 숨었던 얼굴들 다 드러나고, 누구도 내 모습을 보지 못하고, 진저리치는 생으로 불거진 물집 하나 서러운 적요로 붉게 물든 열매 하나조차도 투명하게 사그라지는

내게 와서 내가 되지 못한 눈빛들이, 돌을 뚫고 깨부수던 말들이, 견고한 나무의 길로 위장했던 내 비린 상처들이, 어둠을 혼자 견뎌내던 새들조차도 흔들리며 다 흩어지겠습니다.

이 봄비 그치면 취우 속에 가만히 들어 몸으로 번지는 비취색 나뭇잎 하나 배후로 삼아 한 밤 한 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 단 한 번도 따뜻한 적 없는 시리 조각에 잠겨 한 밤 한 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

주머니 속 시리 두 조각, 긴 세월 지나도 맞붙이 치는 소리 잇몸 시리게 쩡쩡거립니다. 이 봄비 그치면 취우 속에 가만히 들어 한 밤 한 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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