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김소담, 시평/현달환

▲ 김소담 시인 ⓒ제주인뉴스

누가 만들었을까
붓 칠만 묻혀 놓은
취객의 솜씨였을까
회전목마를 타고
시간의 굴레를 벗어던진 채
휑하니 미쳐 버린
물레의 발길질이었을까

어째든 손잡이를 받쳐 들고
커피를 담을 텅 빈 공간의 도가니로
제 운명을 타고났다고
제 몫을 다했다고
세트 잔이 싫어 머그잔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던
늦깎이 변명

애틋한 거짓말은 어땠을까
태어난 것 그 자체만으로도
청자 아미를 닮지는 못했어도
백자 몸통을 닮지는 못했어도
날 줄 같은 매화 가지의 총총거림
만국기처럼 나부끼던
개그와 유머의 각색인생이라도

                      - ‘김소담의 ’머그잔의 늦깎이 변명‘

날씨가 참 이상하다. 오늘 하루도 온종일 방안에 가두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세상의 일은 날씨에 따라 결정되는 게 많다.

요새는 깊다. 비가 내려도 폭우로 내리고 눈이 와도 폭설로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강풍으로 오는 그런 상황을 보면서 커피도 연한 것보다는 짙은 갈색을 부르고 있다.

머그잔에 담은 커피를 보노라면/ ‘회전목마를 타고/시간의 굴레를 벗어던진 채/휑하니 미쳐 버린/물레의 발길질이었을까‘

시나브로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떨리는 마음을 식혀본다. 촉촉하게 내려가는 머그잔속의 커피는 나를 둥둥 떠오르게 한다. [시인 현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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