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은 눈물 속에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불꽃”
“보험은 눈물 속에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불꽃”
  • 현달환 기자
  • 승인 2017.09.16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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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IN제주](5)김경희 삼성생명 백록지점 팀장
“가족을 다시 모을 수 있는 힘, 사명감에 뿌듯해”

제주인뉴스는 ‘음지에도 당당한 제주인’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장인 정신을 갖고 활동을 하고 있는 칭찬받아 마땅한 제주인을 만나보는 시간을 갖는다.

진정한 제주인은 어떤 사람인지 이 기회를 통해 음미해보면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 기대해본다. 불꽃같은 인생을 살아온 초연 김경희 씨를 만났다. 앞으로 많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길을 걷는다. 가을이라 제법 선선하게 날씨가 풀렸다. 신호등 앞에서 만난 분들의 얼굴이 무표정이다. 신호등 앞에서 만난 저 가방을 둘러메고 곱게 차려입은 여성의 얼굴을 바라보니 분명 보험설계사(재무관리사)라는 명함을 소유한 분인 듯하다. 그러면서 마음이 한쪽에서 짠한 마음이 올라온다.

보험이란 말만 들어도 기겁을 하는 분들이 있다. 보험을 온전히 만기 때까지 보유하는 분들을 주위에서 보지 못했다.

그것은 보험을 가입한 개인적인 가정상황도 있겠지만 보험설계사 및 보험회사의 책임도 어느 정도는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가만히 잘 있는 보험을 어느 날 문득 찾아와서는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하면서 보험증권 등을 갖고 가서는 해약하고 새로 가입하는 것이 더 좋다고 권유하기에 마음이 약한 고객들은 쉽게 바꾸곤 한다.

기자의 보험도 10여 년 동안 불입했던 보험을 두어 달 전에 관련회사에서 연락 와서는 갱신하면 보험료가 더 비싸다고 하면서 새로 해약하고 가입하는 일이 있었다.

우리는 보험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집에 자동차 한 대 구입할 적엔 회사, 차종, 가격 등을 비교하고 고민하면서 구입하는 데 보험이란 이 상품은 자동차보다 돈이 더 들어가고 장기적으로 납입하는데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젠 전문가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왔다. 과거의 보험은 동네 아는 지인이 보험회사 다닌다 하면 인정으로 가입도 했지만 지금은 재무 설계사라는 말의 의미처럼 고객의 니즈와 필요성, 전 생애를 통틀어 관리가 안 되면 안 되는 그런 시대가 왔다.

오늘의 제주인뉴스 주인공은 생명보험 설계사를 하고 있는 김경희(43) 씨가 그 주인공이다.

기자는 김경희 팀장과는 안면이 없던 분이다. 제주인뉴스를 통해 두 번째 주인공으로 인터뷰 했던 김세진님의 연락이 있었다. 본인의 절친인 친구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보험을 하는 데 기자가 꼭 한번 만났으면 해서 이에 수긍해서 연락을 통해 만났다.

사실 보험회사 직원이라 홍보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냐고 했는데 직접 만나보니 보험이란 무엇인가? 일상에 만연한 보험을 많이 접하면서도 사실은 잘 모르는 것이 보험이라 서로 인간애를 느낄 수 있어서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김경희씨를 기자는 선택했다.

어쩌면 기자가 알고 있는 보험종사자들은 많다. 그러나 김경희 팀장을 이렇게 직접 인터뷰하는 것은 김 팀장은 보험설계사를 할 인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치원 선생님을 하면 어울릴 인상이었는데 고등학교 이후 보험회사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안녕하세요? 본인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안녕하세요? 제주시 연동에 자리 잡은 삼성생명건물 백록지점에 근무하는 김경희 팀장입니다. 사실 매우 평범한지라 이렇게 직접 인터뷰하신다니 많이 긴장되고 막막했어요.

저의 유년시절은 그리 밝지 않았던 걸로 기억에 남아요. 남들은 많이 겪지 않았을 일들을 많이 겪었던 것 같고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별로 좋지 않은 가정환경 때문에 스스로가 위축될 때도 있었지만 겉으로는 애써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오히려 더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일 때가 많아서 어떤 분들은 부잣집 막내딸인줄 아시는 분도 있어요.(후훗)

제가 태어난 곳은 하얀 은모래가 끝도 없이 펼쳐져있고 깨끗한 과물이 유명한 곽지마을이란 곳인데요. 지금은 전국적으로 곽지해수욕장으로 유명하기도 하죠.

저희 집 골목 앞에 있는 큰 팽나무는 증조할아버지가 자손들을 위해 심었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랄 정도로 곽지에 오랜 터를 잡고 살아왔어요.

저는 2남 2녀 중에 막내로서 우리집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관심을 받으며 자랐지요.

# 어린 시절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화목했군요. 그런데 어릴 적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조금 더 들려줄 수 있나요?

-네. 제가 태어나 다섯 살 되는 해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돌아가셔서 어머니의 정을 느껴보지도 못했지요.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제가 몸이 허약할까봐 무던히도 애지중지했다고 해요.

특히 아버지는 그 어려운 와중에 소규모 농사가 끝나고 수입이 생길 때마다 언니 오빠들 모르게 막내인 저만 데리고 시내(제주시)에 있는 단골 갈비 집에 데리고 다니곤 하셨지요. 아버지는 그게 낙이었고 그때가 제 기억으로는 제일 행복했었던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때가 그리운 걸 보면요.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어느 날 친구들과 바닷가로 놀러갔던 작은오빠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을 때에도 저는 너무 어려서 여섯 살 위 언니가 오열하던 모습이나, 덮여진 마대자루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 죽은 오빠의 발인 줄도 모른 채 철없이 있었어요. 정말 한심한 아이죠?

그전까지 그래도 행복하고 평온했던 우리 가정이 아마도 그때부터 서서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네에서 똑똑하기로 소문났고 학교에서 상이란 상은 다 휩쓸던 언니가 그 충격 때문인지 마음의 병을 앓기 시작하다가 급기야는 정신지체 2급 장애판정을 받기에 이르렀죠.(현재 언니는 요양원 시설에서 생활중임)

이어 주변에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듣던 선량하고 여린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죽음과 큰딸의 병 앞에서 극심한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러 술로 위안을 삼다가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는 해 가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어요.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재에 28세이던 오빠와 19세이던 저는 목 놓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생전에 아버지가 동네 이웃의 보증을 서주며 잡힌 집 담보대출에 대한 은행에서의 압류통보가 대출당사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인 저희에게 통보가 왔어요.

오빠와 전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아야 되는 상황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져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지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가정에 우환이 연이어졌는데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인데요. 그 후 어찌 됐나요?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 해 초에 저는 학교장의 추천으로 당시 신설회사인 국제생명에 여직원으로 입사해서 급여가 있는 상태라 오빠와 힘을 합쳐 밀린 이자와 원금을 조금씩 갚아나가기로 하고 겨우 어릴 때부터 계속 살아온 보금자리를 은행에 뺏기는 일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앞이 안 보이는 어두운 터널이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지는 느낌에 어떤 희망도 즐거움도 없는 생활이었지만 또 동시에 제가 가진 게 없고 내세울게 없다는 생각에 더더욱 “내 자신이 스스로가 자산이 되어 올바르게 살지 않으면 안 되고 조금의 실수도 용납이 되지 않겠구나“ 라는 가치관이 이때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것 같아요.

#보험 영업에 대한 일은 어떻게 하셨나요? 말씀해주시죠.

-93년에 입사한 국제생명은 제2금융권에 속한 회사여서 보험뿐만 아니라 금융이나 재테크에 대한 개념이 없던 저로서는 그때 당시 출시됐던 2~3만 원짜리 저가형 보장성보험과 시중금리 20%를 웃도는 장기 재테크상품과 연금 상품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돈을 만지는 금융업에 종사함으로서 경제개념과 더불어 어릴 때 닥친 불행 속에 만약에 우리가정에도 보험이라는 울타리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자연스레 해보게 되었어요.

아시다시피 98년도에 국가부도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IMF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구제 금융을 지원받았는데 그시기에 국가 경제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정부에서는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당시 33개 보험회사를 25개로 줄이는 인수합병 작업이 시작됐죠.

그때 규모가 작은 신설회사였던 국제생명은 삼성생명에 흡수되는 신세가 됐고 직장을 잃은 저는 다행히 대한생명(현재 한화생명)에 근무하게 됐어요. 그렇게 8년 가까이 같은 보험회사에서 내근 직으로만 근무하던 중 저는 결혼 후에 큰아이와 둘째아이를 출산하고 2년쯤 쉬었죠.

그런데 쉬고 있던 저에게 삼성생명에 영업직으로 먼저 입사한 선배언니의 제의로 2005년 8월에 FC (Financial Consultant: 재정설계전문가)로서의 첫 영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영업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앞섰죠.

지금도 마찬가지로 영업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인데요. 많은 분들이 보험만이 아니고 영업에 있어 거절에 대한 두려움에 망설이지요.

영업이 아닌 일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보면 앞으로 저는 물론이고 사회나 국가도 이 영업력이 떨어지면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것을 알아요.

#보험 영업은 보통 1~2년 정도 하면 그만두는 데 오랫동안 한 비결이 있을까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 보험영업에 대해 편파적으로 인식하던 시기라 주변의 탐탁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 했고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어려울 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잘되고 성공한 다음에 나타나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모진 말로 상처를 주기도 했어요.

그때는 혼자 서럽고 억울해서 눈물도 쏟고 그랬는데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내 자신이 더욱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2년 쯤 됐을 때에는 저도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멸시와 안 좋은 인식을 이겨내고 이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자괴감에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죠.

그런데 그 즈음 제 고객님 중에 고3, 중3 아드님을 두신 49세 과장님이 회사에서 갑자기 쓰러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죠.

얼마간의 조사 끝에 1억여 원의 사망보험금이 지급됐고 당장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수험생을 둘이나 둔 사모님으로부터 “경희 씨가 우리가족을 살려주었어요. 정말로 감사합니다”라는 눈물 젖은 감사의 인사를 받았을 때 비로소 느꼈죠.

“'아, 이 직업은 내 필요에 의해 돈만 버는 직업이 아니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남의 가족과 생명을 살리는 일이구나”라는 이 일에 대한 숭고한 가치를 진정으로 가슴깊이 새기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보험은 정말 가족을 살리는 것이군요. 현재도 그런 마음으로 영업을 하시는지요?

-지금도 저는 그 가정의 상황에 맞게 보험이나 재테크상품 컨셉을 정하고 설계해서 계약을 체결하죠.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불의의 사고나 질병 등으로 문의하시는 고객님들 전화에 최대한 신속하게 안내하고 보험금 접수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집안에 우환이 생겨서 어려운 데 이 보험금으로 위기를 넘기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고객님들을 마주할 때 마다 뿌듯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이 보험 영업은 어렵게 생각하는 데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요?

-현재 저는 팀장 직책을 맡고 있는데 개인계약, 재테크상담, 고객관리 외에 신입사원 도입과 관리, 신입사원 동행업무도 병행하고 있지요.

또 이 보험영업을 시작하고 싶지만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거나 영업에 자신이 없어 망설이는 분에게 예전의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권해드리죠.

저의 사례처럼 그분들이 좀 더 나은 선택과 또 제가 느끼는 이일에 대한 자부심과 뿌듯함 그리고 더불어 따라오는 경제적 여유에 대한 만족감도 맛보게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고객관리 및 상담에 임하고 있습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도 있듯이 어렸을 적의 힘들었던 경험과 아픔들은 제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 거센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뿌리와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다는 걸 요즘은 자주 느끼고 있어요.

제가 과거에 비해 지금처럼 나은 생활을 하듯이 주위의 모든 분들이 제 긍정의 에너지를 전달받아 다 잘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서로 또 같이 상생하고 더불어 사는 그날까지 파이팅하면서 잘 살고 있지요.

#지금 보험의 트렌드는 어떻게 변하나요?

-2017년 대한민국의 금융시장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세법개정과 부동산 규제정책으로 부동산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얼어붙어 있고요. 금융상품의 비과세혜택 축소발표와 최근에는 건강보험의 보장비율을 상향조정한다는 발표도 잇따르고 있지요.

이런 사회적 이슈와 더불어 보험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건강이나 상해보험과 같은 보장 중심 상품이 주력상품이었다면 현재 보험시장은 저금리를 대비한 재테크상품과 부동산 대출리스크헷지라든지 법인사업체 CEO 플랜 등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못다한 이야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세요.

-어릴 적 기억에 저는 비록 어머니의 얼굴은 가물거리지만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즐거운 기억도 있어요. 그 어려웠던 기억속에서도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저 역시 살면서 그러한 행복을 찾고 싶은 욕망일거라고 생각돼요.

저는 이제 남편과 아이 둘을 낳고 오순도순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오빠와 어릴적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언니와도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는 데 항상 의지하며 살고 있지요.

돌아오는 이번 추석에는 우리 가족들과 함께 산소에도 가보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사실 보잘 것 없는 제가 이런 인터뷰에 응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이름 없는 풀도 세상에는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껴봅니다.

기자님도 오늘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경희씨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바닥까지 내려가도 더 이상 바닥에서 다시 더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어릴 적에 그렇게 힘들게 살았을 법한데 밝게 일을 하고 있는 저 중년으로 가는 여성의 속마음은 후련하게 보여도 늘 가슴 한쪽에는 그늘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그늘이란 것은 본인이 겪은 과거 기억의 어두운 그림자일 수도 있고 현재라는 시점에서 영업에 대한 스트레스에 대한 영향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한 길을 걸어가는 본인과 타인들에 있어 걱정하는 마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그늘을 거둘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보험이란 것은 대한민국에 처음 들어오면서 ‘보험가입하면 가입한 사람 죽는다’, ‘바람난다’, ‘역선택’ 등 부정적이어서 좋은 인식으로 출발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보험은 과거가 아니다. 현재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미래의 디딤돌이다. 다가오는 모든 위험을 회피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숭고한 일인 것이다. 한사람을 살리고 한 가정을 살리고 한 사회를 살리는 국가의 기간산업과 같다.

쉽게 말해 ‘내가 당신이 돌아가시면 조의금으로 1억을 들고 가겠다. 대신 매월 10만원의 용돈을 내게 달라’라는 내용이 종신보험일 것이다.

혹자들은 반문한다. “내가 죽으면 돈이 무슨 필요 있냐?고. 하지만 남은 가족이 그것으로 인해 흩어지지 않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보험이란 직업은 멋진 직업인 것이다.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보험이란 것이 있음으로 희망이란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를 타고 가다보면 신호등 네거리에서 기다리는 보험인의 모습을 바라보면 괜히 마음이 짠해지는 것도 보험이란 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야말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고 오랫동안 그 일을 하면서 살아온, 아니 살아갈 이 땅의 모든 보험인에게 경의를 표한다.

김경희 씨를 비롯한 모든 보험영업인을 위해 일전에 써둔 ‘바닥’이란 시를 내밀어본다.

그의 아호는 초연招延이다 이 말은 ‘사람을 불러 끌어들인다’라는 의미다. 그 아호처럼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멋진 영업인이 되길 고대해본다.

눕다
     바닥에
           서다
                바닥에
                        앉다
                              바닥에
                                      죽다
                                           바닥에
존재하는 인간은
바닥에서
모두 공평하다
다 같다

가진 자
덜 가진 자
못 가진 자
바닥이,
바닥은 시작이고 끝이다

바닥이 뜨겁다

                   -현달환 ‘바닥’

김경희 프로필

▲아호 초연 招延
▲곽지리 출생(곽금초등학교 졸)
▲가족 남편, 1남1녀
▲사는 곳 제주시 연동
▲연락처 010-4571-2543
▲메일 05ghe@hanmail.net
▲삼성생명제주지역단 백록지점 팀장
    -1993. 5월 국제생명 입사
    -1999.12월 대한생명 입사
    -2005. 8월 삼성생명입사
    -2005. 9월 변액보험판매 관리사자격취득
    -2005.11월 수익증권 판매 자격취득
    -2010. 5월 손해보험 교차설계사 자격취득
    -2014. 6월 제50회 연도상 CEO특별상 수상
    -2016. 4월 삼성생명 호남사업부 조직명장 팀장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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