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제주인뉴스

거제도수용소를 출발하여 항구에 다다르니 LST(Lading Ship Tank : 탱크상륙전용 배) 배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이 배를 타고서 부산항에 도착하여 미군트럭을 타고 역전으로 가서 열차를 타고 영천으로 향해 올라갔다.

영천에 도착하여 포로수용소에 들어가 보니 나무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날씨는 1952년 8월경으로 무더운 날씨라 부대시설을 하려면 진땀이 났다. 조금 있으니 미군트럭에서 천막을 내린다. 우리들이 사용할 천막이다.

각 부대별로 곡괭이와 삽을 들고 땅을 고르고 천막을 쳤다. 이제는 천막안의 시설을 하여야 한다. 우리들은 낫을 가지고 산으로 가서 나무를 베어다가 내무반 시설을 완료하고 각자가 자기 소지품 배낭을 정리 정돈하니 우리소대는 임무완료 되었다.

운동장정리를 하기 위하여 곡괭이와 삽을 들고 1개월 동안 작업을 한 후 운동장시설이 거의 완료되었다. 앞으로의 과제는 학교를 지어야 하는 것이다. 초, 중, 고등학교를 구별하여 짓는다.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다 천막을 덮어서 집을 짓고 내부시설을 하니 학교 시설인공부방이 완성되었다.

어느 날 작업을 마치고 영외 냇가에 가서 목욕을 하려고 단체로 걸어가는데 뜻밖에 옆을 바라보니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아는 사람 같다. 혹시나 고행문형이 아닌 가하고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군인이 내 앞으로 다가와서 “너는 왜 나를 보느냐?”하고 묻는데 그 소리가 제주도 사투리였다.

“혹시 저가 아는 군인이 있는가 하여 쳐다봅니다.”라고 대답하고서는 조금 지나니 또 다른 군인 한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니 마을 사람 이승원 씨와 얼굴이 비슷하였다, 하지만 나는 포로였으므로 다가서지도 못하고는 냇가에 가서 목욕을 하고나서 그 자리에 다시 가서 만나보려고 인솔자에게 이야기해서 승낙을 얻고 가보니 그 사이에 보초교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군인에게 물었다

“군인 아저씨, 실례 합니다만 아까 이 자리에 섰던 군인 아저씨는 어디 분입니까?”라고 물었다.

“왜 물어?”

“제주도 분 같아서 물어봅니다.”

“그래, 제주도 사람이 맞다!”

“감사 합니다” 하고 나는 부대로 돌아왔다

나중에 집으로 와서 알아본 즉 그 자리에 보초를 선 군인이 틀림없이 이승원씨가 맞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 집에 돌아와서 들었다. 마을 출신인 고인 박병규씨가 말하기를 “수용소 부대 옆에서 이승원하고 나하고 생활하면서 매일같이 포로들하고 작업장에서 만났지만 네가 있는 줄은 차마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나는 고행문형을 찾으려고 군인이나 포로들 중에라도 있는가 하여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았지만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거제도에서는 마을사람을 만났지만 헤어지고 나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저작권자 © 제주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