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 만들고 자연과 세월이 다듬어 놓은 산 체

# 따라비 오름

일찍이 오름 동아리 몇몇 회원들이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오름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참 난감하다고 대답을 한 적이 있다. 저평가가 되는 오름을 비롯하여 비고(高)가 낮은 곳이나 일부 개간이 되어 산 체의 특성이 사라진 곳도 있지만, 어느 곳 하나 나무랄 수 없고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인지라 그저 오를 수 있는 오름이면 다 좋아한다고 했었던가.힘든 고백이고, 어려운 결단으로 공개하자면 난 따라비오름을 가장 좋아한다. like보다는 love로 표현하고 싶을 만큼 따라비 사랑은 끝이 없다.화산체의 특성도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굼부리와 어깨선을 따라 이어지는 능선은 가히 일품이다. 전망은 물론이고 주변을 연계하는 탐방도 비교적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 모습에다 야생화를 비롯하여 억새 군락을 이루는 가을은 로망의 무게가 몇 배로 늘어난다.

빼어난 곡선미와 뛰어난 각선미를 따라 즈려 밟는 기분은 오죽하겠는가. 차라리 그 품에 안겨서 한동안 머물고 싶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따라비이기에 한 해에 몇 차례씩 찾곤 하는 것이다.그런데......화산체로서의 가치와 특징이 잘 나타나는데다 곡선미와 각선미가 일품인 따라비를 두고 애 하필 남자로 표현을 했을까.굼부리와 허리선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여인상이고, 길고 둥글게 이어지는 어깨선 역시 천하의 미인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빼어 닮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남성 중에서도 가장 겪으로 표현을 하고 명칭이 붙었으니 참으로 원통할 일이지 않은가.

용눈이오름의 부드러움보다 더한 s라인의 외모를 지녔고, 안친오름보다 더 다소곳이 a라인 자세를 취했으며, 뒤꿉으니오름보다 더한 매력의 b라인 힙선을 간직했거늘 어찌 대장부로 취급을 했는지 의문이다.따라비 자체는 남성을 뜻하며 구전되는 설화에는 애비(아비)를 상징하고 있다. 지 애비와 애미가 서로 다르다는 맥락에서 나온 설과, 딸+애비를 상징한 민간 어원의 변음으로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따라비의 주변에는 모지오름과 장자오름을 비롯하여 새끼오름이 있어 부가장적 가족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모지(母)와 장자(子)에 이어 새끼(孫)까지 한데 어우러져 있으니 따라비로서는 뿌듯할 수밖에 없다. 설화를 더한다면 좀 더 떨어진 곳에 손지오름(손자)까지 있으니 사실상 대가족을 이룬 게 아니겠는가.따라비는 결국 가장 격이라고 해서 따애비라고 불리던 것이 따래비(따라비)로 명칭이 정해진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족들 중에 북쪽에는 새끼오름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모지오름과 장자오름이 위치하고 있다.

일부 자료 등에 의하면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내용도(땅하래비) 구전이 되지만, 이는 타당성이나 추측성으로 견준다 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는 하다. 어쨌거나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 중에 따라비와 그 일가는 여러 이야기로 우화가 나오면서 관심을 끄는 것은 확실하다.

실체가 더 아름다운 따라비.오름보다 더 아름다운 따라비. 보통의 화산체와는 확연하게 다른 오름이다. 3개의 분화구를 중심에 두고 좌우 2곳의 말굽형 분화구가 쌍으로 맞물려 3개의 원형분화구와 6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완만한 경사와 능선이나 기슭 등의 부드러움은 두 말이 필요가 없이 최고이다.주봉에서 2봉과 3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곡선의 부드러움과 각선미의 우아함으로 어우러졌다. 그야말로 자연이 빚어내고 신이 다듬은 걸작품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어디 이를 두고 어찌 오름의 여왕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북서쪽에는 따라비 일가의 막내 격인 새끼오름이 있다.따라비 주변으로는 큰사슴이오름을 비롯하여 쫇은(짧은)갑마장길 등 오름과 숲길을 포함하는 도보여행지가 있다. 하지만 새끼오름을 찾는 이들은 많지가 않다. 외면당하기 일쑤인 새끼오름은 설움에 겹도록 찬밥 신세이지만 어엿한 산 체를 지니고 있다. 따라비 능선을 지나 목장 방향으로 이동을 한 후 접근을 하면 된다.

# 새끼오름

작지만...낮지만...새끼오름이라는 명칭에 서글픔도 따르지만... 왜소함이나 가여림보다는 넓은 초지를 차지하여 버티는 모습은 차라리 앙증맞고 볼품이 있어 보인다. 산 체의 허전함보다는 자연 미가 더해진 곳이기에 결코 서러워할 새끼가 아니다. 해송과 삼나무 등으로 덮인 등성은 차라리 외부와의 인연을 끊고 고고한데 처하기를 원하는 모습이다.

우거진 수림 아래로는 양치식물과 이끼류를 비롯하여 덤불과 온갖 잡초들이 삶의 터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자신의 전부를 아낌없이 내어주고 자연미를 이뤄냈기에 슬기롭고 지혜로운 오름이 아니겠는가.일대에 산재한 자연 탐방지들은 하나같이 찾는 이들이 많지만 새끼만큼은 예외이다. 그렇게 외면당하고 버림받을지언정 묵묵히 자연미를 갖춘 채 외형의 볼품을 안겨주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기도 하다. 주변에 있는 큰사슴이나 따라비를 비롯하여 모지오름 등에 비하여 산체가 작은 때문에 새끼오름이라고 부른다.

한자로 추악(雛岳)이라고 표기를 한 것을 보면 몸집 자체를 병아리 정도로 여긴 것으로 생각이 된다. 구전되는 명지관(名地官)에서 나타나듯이 새끼는 따라비(딸아비)의 손자를 나타내고 있다. 할아버지인 따라비의 큰아들이 장자오름이고 며느리가 모지(모자)오름이며 셋놈(둘째 아들)이 새끼오름이다. 더불어 함께 만나는 탐방을 통하여 3대로 이어지는 식구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밖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초록의 숲이지만 내부는 썰렁하다. 삼나무가 숲을 이뤘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닐 공간은 충분하다. 이렇다 할 탐방로는 없지만 적당한 공간을 헤집으며 오르면 된다.

새끼의 허리를 지나면 수풀들이 장악을 한 어깨가 기다린다.​ 듬성듬성 소나무와 삼나무들이 차지를 한 곳에는 수풀들이 우거져 있다. 한 발 헤쳐나가는 자체가 부담이 될 정도인데다 이따금 가시덤불이 있어 여간 불편하다. 어쩌면 새끼오름은 이방인들의 출입조차 반갑게 여기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 따라비오름에서 바라본 모지와 장자.

정상에 서면 모지와 장자가 한눈에 보인다.모지오름이 따라비의 며느리이든 마누라이든 상관없이 장자를 감싸 안은 형세임은 틀림이 없다. 아무튼 장자오름이 모지오름의 큰아들이든 남편이든 간에 이들 가족의 중심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비와 모지에 감싸여 낮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그 장자오름의 자태가 그러하며, 이방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결론적으로 이들에게 있어서 우두머리는 따라비이며 장자오름은 사내대장부로서 장남이나 장손 정도의 위치이다. 외형으로만 본다면 오히려 따라비와 모지를 바꿔 불러도 될 법하다. 엄마 곁에서 떠나기를 거부하며 한사코 품속을 그리워하는 장자로서는 자신의 왜소함에 아쉬움도 느낄 거다.

# 장자오름

인근의 오름들과 함께 들리는 우화는 참 그럴듯하게 들린다. 따라비오름에서 바라다 보이는 장자오름은 모지오름의 아들이나 남편으로 취급을 하고 있다. 장자오름을 찾아가는 정도(道)가 이곳이다 하고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좀처럼 입구를 내줄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높거나 험한 곳도 아니다. 필시 이는 장자로서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말썽을 피우며 따돌림을 피웠던 탓에 평생 반성의 기회를 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말썽꾸러기의 신상을 보면 표고가 약 215m이며 비고(高)는 31m밖에 안되는 낮은 등성이이다.역시 농지와 덤불왓의 신세를 지는 일은 당연하다.철통같은 경비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장자의 심한 몸부림을 느낄 수 있다. 수풀과 묘지, 덤불을 겨우 헤치고 능선에 오르면 두 곳으로 나누어진 모습이 이채롭다. 

# 모지오름

모지(母地)악이나 모자(母子)봉 등으로도 부르지만 이즈음에 와서는 대부분 모지오름으로 정착이 된 느낌이다. 즉, 오름의 형상을 토대로 명칭이 정해졌다면 모자가 변형되어 터(地)를 우선으로 하는 모지(母地)오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표고는 305.8m이며 비고(高)는 그 절반에 못 미치는 86m이나 저경이 1km에 가까워 비교적 산체는 큰 편이다.

말굽형 화구 안에 별도의 알오름(火口丘)이 솟아 있는 것이 특징이며, 전체적으로 이 모습을 토대로 하여 명칭이 붙은 것이다. 그 모습이 어머니 품속에 감싸 안긴 새끼(알)오름의 형상을 일컬으는 셈이다. 이 때문에 오름 능선의 정상부 주봉 일대는 에미(어미)동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모지오름 탐방의 묘미는 삼나무 숲을 오른 후 화구를 중심으로 정상부 둘레를 돌아 보는 것이다. 또한 둘레를 돌고 난 후 화구 안으로 들어가서 어린아이(子)의 모습 주변을 바라보는 것도 포함을 해야 한다. 물론 어머니가 품은 아이의 모습을 연상하는데 그 의미를 꼭 부여하고 바라보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어머니의 인자한 성품을 지니 때문일까.아니면 여인네의 넉넉한 배려심을 간직한 때문일까. 모지의 정상을 둘러보는 동안 사방으로 풍경이 열리며 탐방의 묘미를 살려준다. 그러기에 모지오름은 날씨가 좋은 날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린 아이가 엄마품에 안기어 다소곳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삼촌을 향한 부르짖음은 기꺼이 화구로 내려올 경우 안겨주겠다는 응석을 부리는 모습이며 소리이다. 밖으로의 전망이 대단하다면 화구 안의 모습은 위대하게 느껴진다. 빽빽하게 삼나무로 채워진 주위는 이 알오름을 향하여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이다. 이름하여 엄마가 아이를 안은 형세이며 이는 결국 모자(母子. 모지)오름으로 탄생이 된 것이다.

# 손지봉. 손지오름.

따라비일가이면서도 유독 손지오름은 멀리 떨어져 있다.그러면서도 따라비의 식구로 표현을 하는데 명칭만을 놓고 볼 때 그럴듯하게 들린다. 제주를 대표하는 한라산의 손자 격이라는데 근접하거나 송당 권역 주변의 오름에 견주어 손자뻘이라는 설도 있다. 어느 것 하나 정설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정통성이나 절대적인 완성품은 아니지만, 따라비의 가족이라 여기는 것도 억지스럽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 손지(손녀)는 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까 ?자신의 외모가 잘난 때문에 오름의 제왕인 다랑쉬를 향하여 구애 작전을 펼치기 위함이었을까. 쭉 빠진 용눈이가 벌이는 사랑의 행각을 못 마땅하게 여기고 방해 공작을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평소 부모의 애를 태우며 말썽만 부리던 그(그녀)였기에 아예 가족들을 두고서 멀찌감치 날라 온 것이 맞을 것이다. 따라비오름의 각선미와 곡선형의 아름다운 능선은 말이 필요없는 일등급이다. 손지(녀)는 할아버지나 아버지 격이 되는 따라비에게서 그 혈통을 물려받은 셈이다. 이를 두고서 용눈이가 제아무리 잘 빠졌다고 우쭐댄다고 한들 그것은 외형적일 뿐이고, 손지봉의 정상에 섰을 때 모든 오해와 의문점이 풀리게 된다. 손지오름도 아름다움을 넉넉하게 지녔고 주변을 전망하는 폭도 용눈이 그 이상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보라!손녀의 몸가짐에서 느껴지는 각선미와 곡선의 부드러움을 두고서 어찌 용눈이가 저 잘났다고만 떠들겠는가. 동남쪽에 이어지는 손지봉의 능선은 그야말로 최고의 부드러움으로 연결이 된다. 지 애비(할배)인 따라비오름의 혈통과 체질을 그대로 쏘옥 빼 닮았다는거 아니겠는가.앙증맞고 소박할 정도의 화구와 능선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남쪽 정상부의 주봉을 중심으로 하여 비교적 평평한 등성을 이루고 있으며 봉우리는 3개로 나뉘어져 있다. 아름다운 각선미와 부드러운 곡선미. 그러기에 손지오름은 아마도 손자(손지)이기 보다는 손녀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이러한 정황을 알기 위해서는 비로소 정상부에 올라가서 확인을 할 때 그 증명이 된다. 굼부리의 둘레를 따라 이어지는 각선미와 화구 능선에 펼쳐지는 곡선미를 두고서 남자 보다는 여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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